그루터기 신앙
본문

콜럼버스가 바하마 열도에 도착한 것은 1492년 10월 12일이었다.
콜럼버스는 “만일 선원들의 투표에 의해서 항해를 결정하였다면 아마도 대서양을 3분의 1도 건너지 못했을 것이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선원들은 날마다 돌아가자고 주장했고, 때로는 콜럼버스를 위협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굴하지 않고 계속하여 “서쪽으로 전진”을 명령하였다. 그것은 고집이 아니라 집념과 신념이었다.
신념과 희망으로 전진하는 자는 성취의 열매를 거둔다. 그러나 소심하고 두려움에 사로잡힌 자는 성공보다는 실패가 많다. 사람은 신념이 있으면 희망이 생기고, 희망이 있으면 용감해진다. 믿음과 희망이 없는 자는 조급하고 신경질을 부린다. 하지만, 희망과 신념이 있는 사람은 어떤 경우에도 낙심과 좌절하지 않는다. 콜럼버스가 페르난도 왕에게 보낸 편지에 이렇게 썼다.
“나는 성서가 말하는 그루터기 신앙을 가집니다.”
그루터기는 나무나 곡식을 베고 남은 밑동을 말한다. 그루터기는 다시 새싹을 낸다. 그러므로 그루터기 신앙이란 부활의 믿음이다. 그루터기란 재기의 힘, 굴하지 않는 신념, 단념하지 않는 용기를 말한다. 믿음이 있는 자는 인내하고 조용히 기다리는 지혜가 있다. 희망과 신념에 의해 전진하는 정신은 개척정신이다. 믿음과 의심은 성공과 실패의 갈림길이다. 이러한 신념과 용기를 가지는 성도들 되길 바란다.
이런 일을 행하려면 우린 리더쉽을 예수님에게서 배워야 한다. 영적 지도자는 황야의 외로운 늑대가 되려고 해서는 안 된다. 주위 사람들을 세우고 그들과 함께 동역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하며 다시 말하면 사람을 세우는 지도력을 그리스도인은 가져야 한다. 이러한 지도력을 가장 잘 발휘하셨던 분이 바로 예수님이시다. 예수님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사람들을 세워 가셨을까? 고든 맥도날드는 자신의 책 <마음과 마음이 이어질 때>에서 예수님이 베드로를 세워 가시는 원리를 통해 여기에 대한 해답을 제시하고 있다.
1. 투명해지십시오(Transparency)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와 보라”고 초청하셨다. 그리고 그와 3년 동안 함께 생활하셨다. 이것을 통해서 예수님은 베드로가 아주 가까이에서 자신을 바라볼 수 있도록 하셨다. 예수님은 자신의 삶과 자신의 행동을 베드로에게 투명하게 공개하셨던 것이다.
2. 인내하십시오(Endurance)
예수님은 베드로의 잦은 실수에도 불구하고 지나치게 그 실수를 공격하시지 않으셨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성장할 시간이 충분히 필요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인내란 상대방의 미숙한 행동을 모른 체 하는 것이 아니다. 사람마다 성장의 시기가 다르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3. 보호하십시오(Protection)
예수님은 풍랑 위를 걸어보겠다고 나섰다가 바다에 빠졌던 베드로를 그 자리에서 책망하시지 않았습니다. 대신해 그에게 손을 내밀어 바로 건져주셨습니다. 그리고 두 번 다시 그 사건에 대해서 언급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를 보호하실 줄 아셨던 것이다.
4. 기도하십시오(Prayer)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기도에 대해서 가르쳐 주셨을 뿐만 아니라 실제로 제자들을 위해서 기도하는 모범을 보여주셨다. 특별히 예수님은 제자들 개인을 위해서도 기도하셨다. 자신을 부인하지 않겠다고 맹세하는 베드로에게 "내가 너를 위해서 기도하였다"라고 말씀하신 것을 보면 이것을 알 수 있다.
5. 용서하십시오(Forgiveness)
예수님은 자신이 부활했다는 소식을 “베드로에게 말하라”고 하심으로써 아직도 자신이 베드로에게 말씀하고 계심을 알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갈릴리 바닷가에 먼저 찾아가셔서 베드로의 죄책감을 해결해 주셨다. 예수님의 용서는 베드로를 과거의 굴레에서 벗어나 현재와 미래에 뛰어들도록 만들어 주었다.
6. 격려하십시오(Encouragement)
예수님이 승천하실 때 제자들은 아직도 미숙한 상태에 놓여 있었다. 하지만 예수님은 제자들을 자신에게서 분가시키셨다. 제자들은 이제야 예수님을 잘 따를 수 있다고 생각했겠지만, 예수님은 이제야말로 그들을 떠나보내야 할 때임을 아셨다.
예수님은 그들이 스스로 설 수 있도록 용기를 주셨을 뿐만 아니라 스스로 설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도 하셨던 것이다. 현대는 ‘사랑을 주는 것’보다 ‘사랑을 받는 것’에 관심이 많다. 하지만 예수님은 사랑을 주는 ‘능동적 사랑’을 실천하셨다.
여러분 주위의 사람들을 세워가면서 이런 예수님의 능동적 사랑을 배우시는 성도들이 되시길 바란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