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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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거릿 허킨스는 한국 전쟁 때 종군 여기자였다. 그는 온갖 위험을 무릅쓰고 그 치열했던 한국 전쟁을 온 세계에 전했던 공로로 퓰리처상까지 받았다.
그가 미 해병대를 따라 최일선에 갔었을 때 일이다. 전세는 불리해지고 설상가상으로 강추위는 몰아치고 있었다. 하는 수 없이 후퇴를 단행하고 남쪽으로 내려오던 중이었다. 그런 와중에도 끼니때가 되어 통조림 한 통으로 점심을 때우는 병사 하나가 그 여기자의 시선을 끌었다. 텁수룩한 수염에 지친 몰골이었다. 여기자는 그의 곁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그 병사에게 이렇게 물었다.
“만일 내가 하나님이라면 지금 이 시간 당신은 무엇을 원하겠습니까?”
병사는 눈을 지그시 감고 한참을 생각하다가 입을 연다.
“Just give me tomorrow (나에게 내일을 주십시오).”
내일만 보장된다면 이 허기진 배도, 추위도, 어떤 고통도 견딜 수 있다는 말이다. 우리말에는 (어제)라는 말도 있고 (오늘)이라는 말도 있다.
그러나 (내일)이라는 말이 없다. ‘來日’은 한자에서 온 우리 말이고, 오늘이나 어제와 같은 말은 순수한 우리 말이다.
내일이 없는 사람은 희망도 비전도 없다. 내일이 없는 사람은 꿈을 잊어버린 사람이다. 내일을 준비하는 사람은 가장 현명한 사람이다. 우리의 삶은 시간 속에서 과거와 현재와 미래로 구분된다. 과거는 추억으로, 현재는 갈등과 고민으로, 미래는 기대와 희망으로 산다.
현재는 과거의 결과이고, 미래는 현재의 결과라고 사람들은 말한다. 그만큼 과거와 현재와 미래는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뜻일 것이다.
개인의 성장 과정에서, 한 시대의 흐름에서, 과거와 미래는 항상 있게 마련이다. 오늘이 변하여 내일이 되고, 내일이 성큼 오늘로 닥칠 때, 거기에 인간사의 모든 희비애락이 쌓이게 된다.
사람은 이렇게 자신이 걸어온 삶에서 어제를 되돌아보고, 오늘의 문제들 속에 서서 고민하면서, 내일을 바라보게 되는 것이 특징이다. 사도 바울은 자신의 신앙의 어제와 오늘과 내일을 바라보면서, 우리들에게 깊은 교훈을 주었다(엡02장 11절 ~ 22절).
① 그는 겸손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② 그는 과거의 모든 자랑을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그리고 자신은 매일 죽는다고 하였다. 예수 그리스도는 바울의 생애를 이렇게 변화시켰다. 우리는 바울의 회심 후의 생활에서 현재 우리의 생활을 들여다보아야 하겠다.
① 얼마나 나는 예수 믿기 전에 비하여 겸손해졌는가?
② 얼마나 나의 혈육에 속한 탐심들이 십자가에 못 박혔는가?
③ 얼마나 나의 자랑으로 여겼던 과거의 것들을 분토와 같이 버렸는가?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한다.
예수 믿고 무엇인가 내게서 달라진 것을 스스로 발견해야 한다. 성격도 변해야 한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 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딤후4:7-8)
이것은 너무도 분명한 미래에 대한 확신이다. 이 미래에 대한 확신이 그로 하여금 현실을 이길 수 있는 용기를 주었다.
이 미래에 대한 확신이 고난과 핍박을 이길 수 있게 하였다. 이 미래에 대한 확신이 관용과 긍휼로 대할 수 있는 인내를 낳게 하였다.
우리도 사도 바울처럼, 과거를 회상하고, 미래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현재의 고난과 갈등을 이겨내야 하겠다.
우리들도 우리의 신앙생활의 과거, 현재, 미래를 살펴서 바울 사도와 같은 그러한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이것이 바른 신앙생활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우리의 내일이다. 아멘.
/ 우상용 목사
·한영제일교회 담임
·예장한영 총회장
·본지 이사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