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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년 만의 '경자유전' 원칙 복원, 농지 전수조사를 통한 국가 식량 안보 강화 기대

노형석 기자
작성일 2026-05-30 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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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18일 시작된 농지 전수조사가 투기, 부재지주, 불법 전용 등 농지 이용 실태를 데이터로 검증하는 중요한 전환점을 마련했다. 이번 조사가 상시 농지 데이터베이스 구축, 농지의 질적 평가, 그리고 실제 농업인 보호와 결합될 때, 국가 식량 안보를 튼튼히 하고 청년 농업인들의 진입 기반을 마련하는 농지 관리 체계로 발전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채광석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연구위원(농업경제학 박사)은 대한민국 헌법 제121조에 명시된 '경자유전(耕者有田)' 원칙이 단순한 농지 소유 규제를 넘어, 국민의 먹거리와 국가 식량 안보를 지키기 위한 헌법적 선언임을 강조했다. 그는 농지가 단순한 부동산이 아닌, 국민의 먹거리를 생산하는 기반이자 농촌 공동체를 유지하는 터전이며, 국가 식량 안보를 지탱하는 전략 자산임을 분명히 했다. 1948년 제헌헌법 제86조에서 '농지는 농민에게 분배한다'고 선언하고 자작농 체제를 세운 것 역시 이러한 정신의 발현이라고 설명했다.

이재명 정부가 농업을 '국민 먹거리를 지키는 국가 전략 산업'으로 육성하고 농정 전반의 국가 책임을 강화하겠다는 방침 역시 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농지는 시장에서 거래되는 사유재산인 동시에 국민 모두의 삶과 연결된 공공재적 성격을 지닌다. 따라서 농지 정책의 핵심은 규제를 위한 규제가 아니라, 농지가 필요한 사람에게 농지가 연결되도록 하고 보전해야 할 농지는 확실하게 지키는 데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현실은 이러한 헌법적 원칙과 상당한 거리가 있다. 78년이라는 시간 동안 농지 이용 실태는 헌법 정신에서 멀어져 왔다. 통계청 조사 결과에 따르면 2024년 기준 임차 농지의 비율은 47.0%에 달했으며, 농지 면적은 2024년 150.4만 헥타르로 줄어든 상황에서 식량 자급률은 47.9% 수준에 머물러 있다. 더욱이 부재지주의 농지 소유, 불투명한 임대차 계약, 투기 목적의 농지 취득, 휴경 및 불법 전용이 누적되면서 헌법에 명시된 경자유전의 원칙은 오랫동안 현실과 괴리되어 왔다. 농지는 더 이상 생산의 공간이 아닌 자산 증식의 수단으로 변질되었다는 분석이다. 채 박사의 분석(2023년 기준)에 따르면 한국 농지의 PER(Price to Earnings Ratio)은 약 37.4배로, 프랑스(8.4배)나 EU 평균(13.3배)은 물론 일본(36.8배)보다도 높은 수준이며, 특히 경기도는 134.3배에 이른다. 영농 소득만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농지 가격은 청년 농업인과 귀농·귀촌인에게 넘기 어려운 진입 장벽이 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지난 5월 18일부터 시작된 농지 전수조사는 단순한 행정 점검을 넘어, 제헌헌법 이후 78년 동안 선언으로만 존재했던 경자유전의 원칙을 현실의 제도와 데이터로 복원하려는 출발점이라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갖는다. 정부는 2년 동안 농지의 소유, 이용, 경작 실태를 점검하며, 올해는 1996년 농지법 시행 이후 취득한 농지를 대상으로 기본 조사와 심층 조사를 단계적으로 실시한다. 농지 대장과 공익 직불금 정보, 농업 경영체 DB, 농자재 구매 이력 등을 교차 검증하고, 위성·드론·인공지능(AI)으로도 접근이 어려운 농지까지 면밀히 조사한다는 점에서 과거의 서류 중심 관리 방식과 차별화된다. 이번 조사의 가장 큰 의의는 농지 정책의 출발점을 '형식적 확인'에서 '실질적 검증'으로 전환하는 데 있다.

다만, 이번 조사가 일회성 조사에 머물지 않고 미래 농지 관리 체계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원칙이 함께 작동해야 한다. 첫째, 조사 결과를 상시 갱신되는 필지 단위 농지 데이터베이스로 구축해야 한다. 소유권 이전, 임대차, 휴경, 전용, 경작자 변동 정보가 지속적으로 축적되어야 농지 은행 위탁, 청년 농업인 임대 지원, 농업 진흥 지역 관리 및 농지 전용 심사가 더욱 정교해질 수 있다. 둘째, 농지의 양뿐만 아니라 질적 평가가 이루어져야 한다. 생산성, 집단화 정도, 용수 접근성, 기후 재해 취약성, 탄소 저장 및 생태 서비스 가치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하여 보전 가치가 높은 우량 농지는 국가 필수 농지로 엄격히 보호하고, 이용 효율이 낮거나 방치된 농지는 농지 은행 및 지역 계획과 연계하여 합리적인 활용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셋째, 엄정한 조사와 함께 선의의 농업인 보호가 병행되어야 한다. 투기적 소유와 불법 이용은 분명히 바로잡되, 실제 농사를 짓는 임차 농업인과 고령 농업인이 조사 과정에서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세심한 보완 장치가 마련되어야 한다.

경자유전 원칙의 복원은 과거로의 회귀가 아니다. 농지는 농업인과 국민 모두를 위한 전략 자산으로서, 소수의 투기 수단이 아니라 국민의 먹거리와 지역 균형 발전을 위한 공동의 기반이 되어야 한다. 이번 농지 전수조사가 데이터에 기반한 유능한 정부, 국가가 책임지는 농정, 그리고 미래 세대를 위한 식량 안보의 굳건한 출발점이 되기를 간절히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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