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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화진 묘지 관리인 최봉인 장로의 헌신, 재조명해주길”
손자며느리 최지연 사모, 양화진 선교관은 할아버지 소유권 주장

월드미션 기자
작성일 2019-07-25 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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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땅에서 헌신한 선교사들이 안장되어 있는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에 위치한 양화진 선교관부지에 대한 소유권 문제가 불거졌다.

언더우드와 아펜젤러, 윌리엄 홀 등 한국 선교 초기 선교사들 가족들이 묻힌 곳으로 알려진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 그리고 이들을 기념하기 위해 세워진 곳이 양화진 선교관이다.

최지연 원장(샛별 한국문화원)은 지난 71일 저녁 기자회견을 갖고 현 양화진교회 선교관 터는 바로 양화진 묘지를 최초로 관리하고 그 인연 때문에 예수를 믿고 서교동교회의 창립교인이자 제1대 장로로 헌신한 최봉인 장로의 소유였다고 주장했다.

최지연 원장은 최봉인 장로의 손주며느리로 7년 전부터 현 양화진 선교관부지가 최봉인 장로의 소유지였다고 현 소유주로 알려져 있는 백주년기념사업회에 이 사실을 주장해오고 있었다. 다만 최지연 원장은 소유권 반환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최봉인 장로에 대한 기념사업을 해줄 것을 요청하고 있다.

최지연 원장에 말에 의하면 최봉인 장로는 16살에 혼자 강릉에서 서울로 올라와 양화진에 정착해 지금의 아현동과 합정동, 당인리 발전소까지 땅이 퍼져 있을 정도로 재력가가 되었고 친구(이원순)의 전도를 받아 언더우드 선교사에게 세례를 받고 기독교인이 됐다.

최봉인 장로는 1890년 헤론선교사가 죽으며 자신의 집 뒤에 묻게 되고, 이후 묘가 1년에 80개씩 늘어나며 하인과 소작인들과 함께 묘를 관리해 선교사들에 의해 감검관(관리자, 묘지기) 직분을 받았으며 일제 때 선교사들이 다 쫓겨나간 후에도 긴 세월을 수백 개의 묘지를 관리하는 역할을 했다.

최지연 원장은 최봉인 장로가 18961031일 발행된 <독립신문> 기사에 이곳은 개인 자산이 아니라 모든 외국인들을 위하여 제공된 땅이다라는 기사를 보고 당시 5개국 공사 대표였던 러시아 위베를 공사에게 가로 70, 세로 100(200평 규모)인 자신의 땅에 대한 소유를 문서로 작성해 줄 것을 요청했다고 밝히고 위베르 공사는 이를 공식문서를 통해 외부대신 이완용에게 요청했고, 외부대신 이완용이 궁내부대신 이재순에게 다시 공문으로 요청하고 그에 대한 회신이 오간 기록이 당시 궁내부(宮內府)와 외부(外府)사이에 오고 문서를 모은 문서철인 궁내부 래안(宮內府 來案)’에 남아 있다며 양화진 선교관부지의 소유자가 최봉인 장로임을 강조했다.

최 원장은 그리스도의 겸손과 희생으로 타협하려 했으나 결론을 얻지 못해 참으로 안타까운 7년을 보냈다, “세상법으로 가보려고도 했으나, 다시 한 번 세상법정이 아닌 선한방법으로 해결책을 찾고자 이 자리에 섰다. 끝까지 하나님의 방법으로 가고, 오직 하나님 영광 받으시길 기도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최봉인 장로에 대한 역사를 바로 써달라(최봉인 장로가 소유주였고, 자손들이 대한민국 기독교발전을 위해 재산을 헌납했다) 선교관 2층 예배당을 최봉인 장로 기념예배당으로 명칭을 바꿔달라 양화진을 연구하고자 하는 신학생이나 교수, 연구팀들에게 공간을 사용케 해달라 최봉인 장로 후손들이 출판기념회나 추모음악회를 열게 해달라 세계로 나가 있는 현재의 대한민국 선교사들의 친정집으로 사용하고(선교보고, 각종 선교사 모임), 미래의 선교사를 키우는 일에 사용해달라 주일과 수요일 등은 백주년교회가 쓰고, 백주년교회가 쓰지 않는 시간에는 선교사들이 사용하게 해달라 유니온교회의 특별한 행사 때 장소를 제공해 달라 등을 요구했다.

최 원장이 양화진 선교관이 세워진 땅을 최봉인 장로의 소유라고 주장하는 데에는 마포구 합정동 144 주소에는 최봉인 장로와 그 자손들만 살았을 뿐 다른 사람이 살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또한 국가외교문서 외아문일기를 제시했다.

이 문서는 18961031일에 발행된 독립신문 기사 중 이곳은 개인 자산이 아니라 모든 외국인들을 위해 제공된 땅이다라는 보도를 보고, 5개 공사 대표인 러시아 공사 위베르에게 자신이 산 가로 70, 세로 100(200) 땅에 대한 소유를 문서로 작성해 달라고 요청하자, 위베르가 외부대신 이완용에게, 이완용이 내무대신 이재순에게, 이재순이 관할청 홍현택에게, 홍현택이 이재순, 이재순이 이완용, 이완용이 위베르에게 전달한 문서와 답장 등의 내용이다.

내무대신 이재순은 감검관이 땅을 산 것은 인정하나 둘레가 불과 몇십보에 지나지 않는다. 그 앞은 국유지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니 귀 대신이 알아서 대답해 달라고 했고, 외무대신 이완용은 위베르에게 같은 말로 산 것은 인정하니, 귀 대신이 알아서 문장의 귀결을 지어 전대 달라고 하는 내용으로 국가 외구문서로 내무대신 이재순 도장이 찍혀 있다.

최 사모는 이러한 증거와 관련 “10평이든, 천평이든 땅을 산 것을 인정하고 도장을 찍은 것이라며, 할아버지인 최봉인 장로에게 소유권이 있었음을 거듭 밝혔다.

끝으로 최 사모는 결코 돈이 목적이 아니라면서, “양화진이 과거 복음을 주었던 원적지였다면, 오늘의 선교사들과 미래의 선교사들을 연결시키는 선교의 1번지로 만들고 싶다고 작은 바람을 소개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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