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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의 삶

월드미션 기자
작성일 2024-06-21 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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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는 성도답게 살아야 합니다. 성도답게 사는 것은 성도의 자격을 갖추고 사는 것이죠. 뭔가 구별된 백성 말하는 거, 행동하는 거 언행 심사가 달라야 된다는 것입니다. 특별히 성도라면 이 말의 무게감이 있어야 합니다. 말에 인격적이어야 합니다. 내가 했던 말의 95%가 나에게 영향을 미친다고 합니다. 말버릇을 고치면 삶이 달라지며 말투를 바꾸면 삶이 바뀌고 행복이 넘친다고 합니다. 죽는소리를 자꾸 하면 죽을 일만 자꾸 생기고 사는 일만 얘기하고 자꾸 하면 사는 일만 생긴다고 합니다. 그것이 말의 영향력입니다.

성공이라는 단어는 습관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습관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처음에는 우리가 습관을 만들어가지만 나중에는 그 습관이 우리를, 나를 만들어간다는 것입니다.

성품은 결코 하루아침에 형성되는 게 아닙니다. 성품은 좋은 습관들의 복합체이기 때문입니다. 좋은 습관들이 쌓이고 쌓여서 성품이 바뀌고 비로소 삶이 바뀌기 시작하는 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성도가 되기 전에, 집사, 권사, 장로, 목사라고 들리기 전에 인격적인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성령 충만”, “불로, 불로” 해놓고 교회에서 가장 주님을 가슴 아프게 하는 사람들이 나온다면 다 가짜들이라는 얘기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렇게 뭔가 좀 달라진 모습이 하나님 앞에서나 이웃에게도 보여줘야 할 줄로 믿습니다.

‘성도’는 ‘구별하여 하나님께 드려진 백성’이라는 뜻입니다. 히브리말로 성도는 ‘믿음’, ‘신앙’을 가진 자를 말합니다. 신앙이라는 말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100% 믿고 그분만을 의지하고, 그분께 맡기고, 그분께만 소망을 두고 사는 백성, 그리고 그분만을 바라보고 사는 성도 이게 신앙인인 줄로 믿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도는 세상과 구별되게 살아야 할 것입니다. 언행 심사 모두 구별되어야 합니다. 오늘 성도의 삶이라는 제목으로 저와 여러분이 깊은 은혜의 시간 되어주기를 축복합니다.그러면 성도는 어떤 사람입니까라는 질문입니다.

첫째, 성도는 선민 택한 백성입니다. 선민은 선민의 자격을 갖춰야 선민이지, “나 선민이야” 한다고 선민은 아닙니다. 선민은 특별히 구별된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러면 선민은 특별한 은총이 있습니다. 그 첫째가 영생입니다. 우리는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살아서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특별 은총이 있으며 안 믿는 사람들과 믿는 사람의 차이가 그겁니다.

그리고 그 선민은 3가지 자격이 필요합니다. 첫째는 그들은 특별히 안식일을 지켰다는 사실입니다. 두 번째 절기를 지켰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하나가 할례를 받았다는 사실입니다.할례는 오늘날 세례를 의미합니다. 세례는 구원받은 표정이고 내가 죄지은 받음의 의미입니다. 그다음에 불세례가 있으며, 이건 성령으로 거듭나는 것을 의미합니다.

성도의 생애는 다른 점이 있습니다. 일단 태어나는 것이 다릅니다. 요한복음 3장 5절 말씀을 보면 우리는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거듭난 것은 썩어질 씨로 난 게 아니라 썩지 아니할 씨로 되었다고 말씀하십니다(벧전 1:23).

두 번째는 사는 것이 다릅니다. 우리의 삶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산 재물로 드리는 영적 예배로 삽니다. 내가 의로운 것 같고 아무리 내가 옳은 것 같아도 악의 도구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평생 악의 도구가 되지 않고 선한 도구로 쓰임 받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세 번째는 죽는 것이 다릅니다. 그래서 살든지 죽든지 우리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케 되기를 원한다고 하는 빌립보서 1장 20절의 고백이 여러분의 고백이 되길 바랍니다. 이것만 믿고 ‘아멘’하고 ‘은혜’받으면 우리의 삶이 이제 꽃이 필 겁니다.

네 번째는 믿음의 대상이 다릅니다. 우리는 주님만 바라보고 주님만 믿습니다. 충성의 대상이 다른 것입니다. 불의한 자에게 충성하지 않아 주님께 충성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소망은 하늘에 있고 천국의 면류관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웃 원수라도 사랑할 수 있는 것입니다. 믿음 없는 사람은 교회를 100년 다녀도 이게 잘 안된다고 그럽니다. 그러나 성령 받고 거듭난 사람은 다릅니다. 원수도 사랑할 수 있어요.

그다음에 순종의 대상이 다릅니다. 내가 말씀에 의지하여 주님의 말씀에 의지하여 순종합니다. 그리고 교재의 대상이 다릅니다. 마귀 장난하고 그런 원수들 미워하고 혈기 부리고 하는 사람과 교제하지 말고 우리는 성령 받고 거듭난 사람, 주님을 사랑한 사람과의 교재가 일어나면 처음에는 실패할 것 같아도 나중에는 성공할 줄로 믿습니다. 그다음에 동행의 대상이 다르며, 경배의 대상이 다릅니다. 

의롭게 사는 자는 복을 받기 위해서 어떻게 사는 것이냐고 물어보면 시편 1편 1절에서 쭉 나옵니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귀를 쫓지 않고 죄인의 길에 서지 않습니다.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한다고 합니다. 그럼 어떤 축복이 옵니까?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쫓아 열매 맺고 잎사귀가 마르지 않고 하는 일마다 다 형통하리로다 이렇게 약속하고 있는 줄로 믿습니다.

반면에 악인은 그렇지 않습니다.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형통의 복을 누리시기를 축복합니다. 늘 감사가 넘치기를 축복합니다. 성도답게 사는 성도의 삶 꼭 기억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장향희 목사

든든한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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