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독(派獨) 간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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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독(派獨) 간호사가 올해로 꼭 60주년이 되었다. 파독 간호사들은 병원 내 환자의 간호는 물론이고, 간호 보조와 허드렛일까지 감당했다. 그래서 당시 독일인들은 한국의 간호사들을 일컬어 “한국의 천사들”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그무렵 파독 광부들은 지하 1,000m의 갱도에 들어가 비지땀을 쏟았다. 가히 생사를 건 작업이었다고 했다. 당시 일거리가 없던 터라 대졸 출신들도 많이 지원했다. 선발 방법도 참으로 기발했다. 무거운 가마니를 둘러매고 달리는 것으로 가부를 결정지었다.
1960년대 우리 대한민국은 참으로 가난하고, 앞길이 보이지 않는 세계 최빈국이었다. 박정희 대통령은 이토록 가난한 나라를 살리려 “우리도 한번 잘 살아보세!”라는 구호를 외쳤다. 그러나 우리는 워낙 자본이 없는 가난한 저개발 국가였다. 박 대통령은 남의 나라 비행기를 빌려 타고 독일 대통령을 만나 “우리나라에 자본을 빌려달라”고 했지만, 독일 대통령은 박 대통령의 요청을 싸늘하게 거부했다. ‘뭘 믿고 그토록 가난한 나라에 돈을 빌려줄 수 있는가!’라는 생각으로 그렇게 대했던 것 같다.
그러나 그때 박정희 대통령의 지혜가 발동되었다. 당시 서독 사람들은 탄광에 들어가는 것을 힘겨워했다. 그래서 박 대통령은 “한국에서 광부들을 보내겠다”, “간호사들까지 파송해 주겠다”라고 제안하면서 독일 대통령을 설득했다. 사실 박 대통령은 그들을 담보로 차관을 얻어낸 셈이다. 또 박 대통령은 독일의 잘 닦인 ‘아우토반’을 보면서, 속으로 ‘우리도 저런 고속도로를 만들면 좋겠다’라고 마음먹었다고 한다. 그렇게 박 대통령의 혜안으로 차관을 얻어냈고, 그것이 오늘의 대한민국이 경제 대국이 된 종잣돈이 되었다. 한편 파독 간호사들은 요양원에서 일하거나 시체를 닦는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렇게 파독 간호사, 파독 광부들의 파견은 1966년부터 약 10여 년 동안 계속되었다. 참으로 슬프고도 아픈 우리나라의 역사라 할 수 있다.
나는 1970년대 초에 암스테르담에 있었다. 그래서 가끔 틈을 내서 독일에 가곤 했었다. 한번은 독일 간호사들과 광부들이 그 힘들고 어려운 상황 속에서 20~30명씩 모여 하나님께 예배드리고 있었다. 그들은 이역만리 그 머나먼 독일 땅에서, 주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와 위로를 받고 있었다. 그런데 때마침 내게 연락이 왔다. 암스테르담에서 기차로 7시간이 걸리는 곳까지 와서 매주 설교해 달라는 부탁이었다. 그러나 ‘주말에 왕복 15시간을 바치면, 공부를 할 수 없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어, 그들의 부탁을 정중히 거절했었다. 그러나 그들의 요청을 거절한 것이 늘 마음에 걸렸다. 공부는 잘되었지만, 목사로서 성도들의 부름에 응답하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웠다.
그 후 한번은 독일의 간호사, 광부들이 암스테르담으로 여행을 왔는데, 관광 가이드가 없어 내게 암스테르담 운하 투어(Canal Tour)의 해설을 하라는 것이었다. 나는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말하자면 그날 하루 아르바이트 자리가 생긴 것이다. 나는 내가 아는 지식을 모두 동원해서 한 시간 동안 해설했다. 나는 암스테르담에 대해 잘 모르면서도 이런저런 이야기를 만들어 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 낯 뜨거운 해설이었다. 어쨌든 나는 그 일로 100마르크가 생겼다. 그런데 보트 투어를 마치고 독일로 돌아가는 관광버스 안에 여러 간호사들이 보였는데, 남의 나라에 와서 들뜬 분위기도 없이 대기하는 버스 안에서 몇 사람이 작은 포켓 성경을 펴서 읽고 있었다. 그 장면이 50여 년의 세월이 지났는데도 그대로 내 마음에 머물러 있다.
멀리 지구 반대편에 파독 간호사, 파독 광부로 와서 고생하면서도 늘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살려는 젊은이들이 있다는 것이 희망이었다. 그것이 오늘 한국 교회의 힘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오늘의 자유 대한민국이 경제 대국으로 발돋움할 수 있었던 것은, 어쩌면 사지에서 고생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이 그들에게 위로와 평강을 주었다는 것을 확인한 셈이다. 박정희 대통령의 위대한 결단과 지혜가 없었으면 오늘의 대한민국은 없었다. 그리고 이승만 건국 대통령의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 한미동맹, 기독교 입국론이 없었더라면 오늘의 대한민국도, 박정희 대통령의 경제 대국의 꿈도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오늘의 경제 부국도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런데 최근에 어떤 영화사에서 육영수 여사를 암살한 것은 박 대통령이라는 내용을 다룬 적이 있다. 그 영화는 바로 ‘암살오포’(가칭)류의 영화들이었다. 영화의 자유니, 영화의 상상력이니 들먹이며 쏟아내는 영화가 사실은 ‘네오마르크스주의(Neo-Marxism)’에 물든 세력들의 영화라 할 수 있다. 이처럼 공산주의 사상은 논리나 이론보다 영화, 소설, 시나리오 등의 ‘문화’를 통해 자본주의와 민주주의의 문제점을 깨부수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 일찍이 이탈리아 공산주의자인 ‘그람시의 진지전 이론’을 본받고 있는 셈이다. 어디 그 영화뿐이겠는가? 이른바 국제 무대에서 최고상을 받았다는 한국 영화의 상당수는 사실 공산주의 사상을 은연중에 예찬하는 스토리다. 60년 전 박정희 대통령의 위대한 결단과 파독 간호사, 파독 광부들의 눈물과 땀으로 일군 대한민국을 저격하는 것을 ‘예술’이라는 무기로 삼아 세상을 뒤집어버리려는 자들이 있다니, 이 풍요로운 가을 계절에 가슴이 먹먹하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라고 했던가?
대한민국의 가치를 훼손하는 선동적인 영화들을 경계하라!
그 속에는 자유민주주의를 해치는 독(毒)이 들어 있다.
정성구 박사(전 총신대, 대신대 총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