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곳의 아픔과 곁의 신음, 교회의 시선은 어디를 향하는가
월드미션신문 기자
작성일 2026-07-01 08:10
본문
지구 반대편 베네수엘라에서 들려온 비극적인 강진 소식에 한국 교회가 즉각 기도의 깃발을 올리고 나눔의 손길을 펼치고 있다. 폐허 속에서 신음하는 영혼들을 향한 이 신속하고 따뜻한 반응은, 그리스도의 사랑이 지리적 거리를 넘어 살아 움직이는 생명력임을 증거하는 귀한 모습이다. 세상의 가장 낮은 곳을 향해 흘러가는 교회의 섬김은 어두운 시대에 소망의 빛을 던지는 등불과도 같다.
그러나 이 밝은 등불 아래, 우리가 미처 살피지 못한 짙은 그늘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최근 발표된 ‘기독교인의 우울 경험과 인식’ 조사는 충격적인 현실을 드러낸다. 성도 3명 중 1명이 우울감을 경험하고 있으며, 상당수가 교회 공동체 안에서 자신의 아픔을 터놓지 못하고 홀로 고립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먼 곳의 재난에는 한마음으로 아파하면서도, 바로 곁에서 침묵 속에 무너져 내리는 형제자매의 신음에는 무감각했던 우리의 자화상이 그곳에 있다. 교회 문 앞에서 멈춰버린 공감과 돌봄의 공백은 한국 교회가 당면한 가장 시급하고 본질적인 과제다.
역사는 우리에게 중요한 교훈을 남긴다. 크림전쟁 당시, 플로렌스 나이팅게일은 ‘등불을 든 여인’으로 불리며 어두운 야전 병원에서 부상병들을 밤낮으로 돌보았다. 그러나 그녀의 진정한 위대함은 개별적인 간호 행위를 넘어, 병사들의 사망 원인에 대한 통계를 면밀히 분석하고 병원 전체의 비위생적인 시스템을 혁신하여 사망률을 극적으로 낮춘 데 있다. 눈앞의 환자를 돌보는 따뜻한 마음과, 고통의 근본 원인을 파악하고 구조를 바꾸는 차가운 이성을 겸비했던 것이다. 지금 한국 교회는 베네수엘라를 향한 나이팅게일의 따뜻한 마음을 보여주었다. 이제는 우리 내부의 통계가 가리키는 고통의 실체를 직시하고, 영적 돌봄의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개혁하는 나이팅게일의 차가운 이성이 필요하다.
교회의 모든 직제와 사역의 궁극적인 목적은 영혼을 살리고 온전한 쉼을 제공하는 데 있다. 호신회와 같은 직능 단체의 모임도, 평신도바이블아카데미와 같은 교육 프로그램도 결국 이 하나의 목표를 향해야 한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이렇게 약속하셨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마태복음 11:28-30). 교회가 이 약속이 실현되는 ‘장소’가 되지 못한다면, 그 모든 조직과 활동은 공허한 울림에 그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이제 한국 교회는 시선을 안으로 돌려야 한다. 세계를 향한 선교적 열정을 잃지 않으면서도, 공동체 내부의 가장 연약한 지체들을 보듬는 목회적 감수성을 회복해야 한다. 정기총회에서 선출된 새로운 리더십은 조직의 외연 확장보다 성도 한 사람의 내면을 살피는 일에 우선순위를 두어야 하며, 성경공부는 지식의 축적을 넘어 상처 입은 마음을 치유하는 능력이 되어야 한다. 교회가 세상의 소금이 되기 전에, 먼저 서로의 상처를 핥아주는 따뜻한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그리스도의 등불이 먼 땅끝뿐만 아니라, 바로 우리 곁 성도의 어두운 마음 깊은 곳까지 환히 비추게 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그러나 이 밝은 등불 아래, 우리가 미처 살피지 못한 짙은 그늘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최근 발표된 ‘기독교인의 우울 경험과 인식’ 조사는 충격적인 현실을 드러낸다. 성도 3명 중 1명이 우울감을 경험하고 있으며, 상당수가 교회 공동체 안에서 자신의 아픔을 터놓지 못하고 홀로 고립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먼 곳의 재난에는 한마음으로 아파하면서도, 바로 곁에서 침묵 속에 무너져 내리는 형제자매의 신음에는 무감각했던 우리의 자화상이 그곳에 있다. 교회 문 앞에서 멈춰버린 공감과 돌봄의 공백은 한국 교회가 당면한 가장 시급하고 본질적인 과제다.
역사는 우리에게 중요한 교훈을 남긴다. 크림전쟁 당시, 플로렌스 나이팅게일은 ‘등불을 든 여인’으로 불리며 어두운 야전 병원에서 부상병들을 밤낮으로 돌보았다. 그러나 그녀의 진정한 위대함은 개별적인 간호 행위를 넘어, 병사들의 사망 원인에 대한 통계를 면밀히 분석하고 병원 전체의 비위생적인 시스템을 혁신하여 사망률을 극적으로 낮춘 데 있다. 눈앞의 환자를 돌보는 따뜻한 마음과, 고통의 근본 원인을 파악하고 구조를 바꾸는 차가운 이성을 겸비했던 것이다. 지금 한국 교회는 베네수엘라를 향한 나이팅게일의 따뜻한 마음을 보여주었다. 이제는 우리 내부의 통계가 가리키는 고통의 실체를 직시하고, 영적 돌봄의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개혁하는 나이팅게일의 차가운 이성이 필요하다.
교회의 모든 직제와 사역의 궁극적인 목적은 영혼을 살리고 온전한 쉼을 제공하는 데 있다. 호신회와 같은 직능 단체의 모임도, 평신도바이블아카데미와 같은 교육 프로그램도 결국 이 하나의 목표를 향해야 한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이렇게 약속하셨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마태복음 11:28-30). 교회가 이 약속이 실현되는 ‘장소’가 되지 못한다면, 그 모든 조직과 활동은 공허한 울림에 그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이제 한국 교회는 시선을 안으로 돌려야 한다. 세계를 향한 선교적 열정을 잃지 않으면서도, 공동체 내부의 가장 연약한 지체들을 보듬는 목회적 감수성을 회복해야 한다. 정기총회에서 선출된 새로운 리더십은 조직의 외연 확장보다 성도 한 사람의 내면을 살피는 일에 우선순위를 두어야 하며, 성경공부는 지식의 축적을 넘어 상처 입은 마음을 치유하는 능력이 되어야 한다. 교회가 세상의 소금이 되기 전에, 먼저 서로의 상처를 핥아주는 따뜻한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그리스도의 등불이 먼 땅끝뿐만 아니라, 바로 우리 곁 성도의 어두운 마음 깊은 곳까지 환히 비추게 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기사 공유하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