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장을 넘어, 세상 속으로 흐르는 강물처럼
월드미션신문 기자
작성일 2026-06-12 08:10
본문
최근 한국 교계의 동향은 하나의 뚜렷한 방향성을 가리키고 있다. 각 교단과 단체들이 저마다의 자리에서 교회의 울타리를 넘어 세상의 필요에 응답하려는 거룩한 몸부림을 시작한 것이다. 다음세대를 위한 학원복음화 플랫폼 구축에서부터 중독과 자살 문제에 대한 사회적 치유 캠페인, 교회의 유휴 공간을 지역사회 돌봄의 거점으로 전환하려는 시도, 그리고 국가를 위해 희생한 이들을 기억하고 보은하는 수십 년간의 헌신에 이르기까지, 이 모든 움직임은 개별적인 사건의 나열이 아닌, 시대의 아픔에 동참하려는 한국 교회의 거시적인 흐름을 보여준다.
이는 교회가 더 이상 스스로의 생존과 성장에만 매몰되지 않고, 세상의 빛과 소금이라는 본질적 사명을 회복하려는 자기 성찰의 발로이다. 신앙이 개인의 경건과 교회 내부의 활동에만 머무를 때, 그것은 생명력을 잃고 박제화된 종교로 전락하고 만다. 진정한 신앙은 반드시 삶의 구체적인 현장으로 흘러가 세상을 변화시키는 능력으로 나타나야 한다.
18세기 영국, 젊고 유능한 정치가였던 윌리엄 윌버포스는 깊은 신앙적 회심을 경험한 후 정계를 떠나 목회자가 되려 했다. 그러나 그의 영적 멘토였던 존 뉴턴은 그를 만류하며 이렇게 조언했다. “하나님께서 당신을 그 자리에 세우신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윌버포스는 그 부르심에 순종하여 의회에 남았고, 이후 그의 삶은 영국 사회의 가장 어두운 상처였던 노예무역을 폐지하는 데 온전히 바쳐졌다. 수십 년에 걸친 끈질긴 반대와 조롱 속에서도 그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인간을 상품처럼 거래하는 것은 신성모독’이라는 기독교적 신념 하나로 버텼다. 그의 투쟁은 마침내 1807년 노예무역 폐지법안 통과라는 위대한 결실을 보았고, 이는 한 사람의 신앙이 어떻게 국가와 역사의 물줄기를 바꿀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장엄한 증거가 되었다.
오늘날 한국 교회가 마주한 과제들 역시 윌버포스가 싸웠던 거대한 악과 다르지 않다. 다음세대가 무너지는 교육 현장, 개인과 가정을 파괴하는 중독의 사슬, 소외된 이웃의 고통, 그리고 잊혀가는 희생의 역사는 교회가 마땅히 책임감을 느끼고 뛰어들어야 할 공적 영역이다. 각 교단이 연합하여 지혜를 모으고, 개교회가 가진 공간과 자원을 이웃을 위해 내어놓으며, ‘주께 하듯 하라’는 신실한 마음으로 섬김의 본을 보이는 것은 이 시대에 윌버포스의 사명을 감당하는 길이다. 중독을 이기는 가장 강력한 치료제가 ‘사랑’이라는 외침처럼, 교회가 가진 유일하고도 가장 강력한 무기는 바로 조건 없는 그리스도의 사랑이다.
이러한 흐름이 일시적인 유행이 아닌 한국 교회의 본질적인 체질 개선으로 이어져야 한다. 교회의 생명력은 더 이상 건물이나 교인의 숫자로 증명되지 않는다. 교회가 얼마나 세상의 아픔을 끌어안고, 그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스스로를 내어주는가에 달려 있다. 성전에서 흘러나온 물이 온 땅을 소성시키는 에스겔의 환상처럼, 한국 교회가 이제 담장을 넘어 세상 속으로 흘러 들어가는 생명의 강물이 되기를 소망한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명령은 분명하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 데 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마태복음 5:13-14)
이는 교회가 더 이상 스스로의 생존과 성장에만 매몰되지 않고, 세상의 빛과 소금이라는 본질적 사명을 회복하려는 자기 성찰의 발로이다. 신앙이 개인의 경건과 교회 내부의 활동에만 머무를 때, 그것은 생명력을 잃고 박제화된 종교로 전락하고 만다. 진정한 신앙은 반드시 삶의 구체적인 현장으로 흘러가 세상을 변화시키는 능력으로 나타나야 한다.
18세기 영국, 젊고 유능한 정치가였던 윌리엄 윌버포스는 깊은 신앙적 회심을 경험한 후 정계를 떠나 목회자가 되려 했다. 그러나 그의 영적 멘토였던 존 뉴턴은 그를 만류하며 이렇게 조언했다. “하나님께서 당신을 그 자리에 세우신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윌버포스는 그 부르심에 순종하여 의회에 남았고, 이후 그의 삶은 영국 사회의 가장 어두운 상처였던 노예무역을 폐지하는 데 온전히 바쳐졌다. 수십 년에 걸친 끈질긴 반대와 조롱 속에서도 그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인간을 상품처럼 거래하는 것은 신성모독’이라는 기독교적 신념 하나로 버텼다. 그의 투쟁은 마침내 1807년 노예무역 폐지법안 통과라는 위대한 결실을 보았고, 이는 한 사람의 신앙이 어떻게 국가와 역사의 물줄기를 바꿀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장엄한 증거가 되었다.
오늘날 한국 교회가 마주한 과제들 역시 윌버포스가 싸웠던 거대한 악과 다르지 않다. 다음세대가 무너지는 교육 현장, 개인과 가정을 파괴하는 중독의 사슬, 소외된 이웃의 고통, 그리고 잊혀가는 희생의 역사는 교회가 마땅히 책임감을 느끼고 뛰어들어야 할 공적 영역이다. 각 교단이 연합하여 지혜를 모으고, 개교회가 가진 공간과 자원을 이웃을 위해 내어놓으며, ‘주께 하듯 하라’는 신실한 마음으로 섬김의 본을 보이는 것은 이 시대에 윌버포스의 사명을 감당하는 길이다. 중독을 이기는 가장 강력한 치료제가 ‘사랑’이라는 외침처럼, 교회가 가진 유일하고도 가장 강력한 무기는 바로 조건 없는 그리스도의 사랑이다.
이러한 흐름이 일시적인 유행이 아닌 한국 교회의 본질적인 체질 개선으로 이어져야 한다. 교회의 생명력은 더 이상 건물이나 교인의 숫자로 증명되지 않는다. 교회가 얼마나 세상의 아픔을 끌어안고, 그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스스로를 내어주는가에 달려 있다. 성전에서 흘러나온 물이 온 땅을 소성시키는 에스겔의 환상처럼, 한국 교회가 이제 담장을 넘어 세상 속으로 흘러 들어가는 생명의 강물이 되기를 소망한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명령은 분명하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 데 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마태복음 5:13-14)
기사 공유하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