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파수꾼, 시대의 등불 되어야 할 교회
월드미션신문 기자
작성일 2026-07-26 08:10
본문
어둠이 짙어질수록 작은 빛의 소중함은 더욱 선명해진다. 작금의 대한민국 사회는 생명의 가치가 뿌리부터 흔들리는 깊은 영적 어둠을 통과하고 있다. 정부가 낙태 약물 도입을 공공연히 거론하고, 연명의료 중단을 넘어 적극적 안락사 논의까지 수면 위로 떠오르는 현실은, 우리 사회가 생명을 어디까지 경시할 수 있는지에 대한 통렬한 질문을 던진다.
이러한 시대적 흐름 속에서 한국교회 주요 연합기관들이 일제히 생명 수호를 외치며 나선 것은 늦었지만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다. 이는 단순히 하나의 사회 정책에 대한 반대가 아니다. 인간의 생명이 창조주 하나님께 속한 신성한 영역임을 고백하는 신앙의 정수이자, 교회가 세상의 소금과 빛으로 부름받은 본질적 사명에 대한 응답이다. 국가는 헌법적 의무를 방기하고, 시대는 효율과 편의의 이름으로 생명의 존엄을 저울질하지만, 교회는 바로 그 지점에서 ‘아니오’라고 말해야 할 거룩한 책무를 지닌다.
나치 독일의 암울한 시절, 신학자 디트리히 본회퍼는 그의 저서 『나를 따르라』에서 ‘값싼 은혜’를 통렬하게 비판했다. 그는 ‘값싼 은혜’를 ‘회개 없는 용서요, 제자도 없는 세례이며, 십자가 없는 성찬’이라 규정하며, 대가 없는 신앙의 허구성을 지적했다. 오늘날 생명의 위기 앞에서 침묵하거나 모호한 태도를 취하는 것은, 이 시대의 교회가 ‘값싼 은혜’에 안주하려는 유혹에 빠진 것과 다르지 않다. 태아의 생명을 지키고, 고통 속에 있는 이들의 마지막 존엄을 보호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세상의 비난과 오해를 감수해야 하는 ‘값비싼 대가’를 요구하는 제자도이다. 본회퍼가 광기에 휩싸인 시대를 향해 신앙의 양심을 외쳤듯, 한국교회는 생명을 경시하는 풍조에 맞서 고독하지만 단호한 예언자의 목소리를 내야 한다.
다행스러운 점은 한국교회가 단순히 구호를 외치는 데 그치지 않고, 구체적인 행동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생명윤리 세미나를 통해 성도들의 신학적 토대를 견고히 하고, 각계 전문가들로 구성된 자문위원단을 출범시켜 전문적이고 논리적인 대응을 모색하는 모습은 매우 고무적이다. 또한 ‘갈등극복기독교연합’의 창립은, 생명 문제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에 만연한 분열과 상처를 치유하는 교회의 본질적 사명을 회복하려는 거룩한 몸부림으로 읽힌다. 교회는 생명의 가치를 선포하는 동시에, 갈등으로 신음하는 사회를 품는 어머니의 마음을 회복해야 한다.
성경은 우리에게 분명히 명령한다. “너는 말 못 하는 자와 모든 고독한 자의 송사를 위하여 입을 열지니라 너는 입을 열어 공의로 재판하여 곤고한 자와 궁핍한 자를 신원할지니라” (잠언 31:8-9). 스스로를 변호할 수 없는 가장 작은 생명인 태아의 목소리가 되고, 죽음의 문턱에서 고통받는 이들의 손을 잡아주는 것이 바로 이 시대 교회가 감당해야 할 사명이다. 한국교회는 이제 생명의 위기라는 거대한 파도 앞에서 좌초할 것인지, 아니면 진리의 등대를 높이 드는 파수꾼이 될 것인지 중대한 기로에 서 있다. 교회가 다시 한번 시대의 등불이 되어 생명의 길을 밝히는 거룩한 사명을 온전히 감당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이러한 시대적 흐름 속에서 한국교회 주요 연합기관들이 일제히 생명 수호를 외치며 나선 것은 늦었지만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다. 이는 단순히 하나의 사회 정책에 대한 반대가 아니다. 인간의 생명이 창조주 하나님께 속한 신성한 영역임을 고백하는 신앙의 정수이자, 교회가 세상의 소금과 빛으로 부름받은 본질적 사명에 대한 응답이다. 국가는 헌법적 의무를 방기하고, 시대는 효율과 편의의 이름으로 생명의 존엄을 저울질하지만, 교회는 바로 그 지점에서 ‘아니오’라고 말해야 할 거룩한 책무를 지닌다.
나치 독일의 암울한 시절, 신학자 디트리히 본회퍼는 그의 저서 『나를 따르라』에서 ‘값싼 은혜’를 통렬하게 비판했다. 그는 ‘값싼 은혜’를 ‘회개 없는 용서요, 제자도 없는 세례이며, 십자가 없는 성찬’이라 규정하며, 대가 없는 신앙의 허구성을 지적했다. 오늘날 생명의 위기 앞에서 침묵하거나 모호한 태도를 취하는 것은, 이 시대의 교회가 ‘값싼 은혜’에 안주하려는 유혹에 빠진 것과 다르지 않다. 태아의 생명을 지키고, 고통 속에 있는 이들의 마지막 존엄을 보호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세상의 비난과 오해를 감수해야 하는 ‘값비싼 대가’를 요구하는 제자도이다. 본회퍼가 광기에 휩싸인 시대를 향해 신앙의 양심을 외쳤듯, 한국교회는 생명을 경시하는 풍조에 맞서 고독하지만 단호한 예언자의 목소리를 내야 한다.
다행스러운 점은 한국교회가 단순히 구호를 외치는 데 그치지 않고, 구체적인 행동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생명윤리 세미나를 통해 성도들의 신학적 토대를 견고히 하고, 각계 전문가들로 구성된 자문위원단을 출범시켜 전문적이고 논리적인 대응을 모색하는 모습은 매우 고무적이다. 또한 ‘갈등극복기독교연합’의 창립은, 생명 문제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에 만연한 분열과 상처를 치유하는 교회의 본질적 사명을 회복하려는 거룩한 몸부림으로 읽힌다. 교회는 생명의 가치를 선포하는 동시에, 갈등으로 신음하는 사회를 품는 어머니의 마음을 회복해야 한다.
성경은 우리에게 분명히 명령한다. “너는 말 못 하는 자와 모든 고독한 자의 송사를 위하여 입을 열지니라 너는 입을 열어 공의로 재판하여 곤고한 자와 궁핍한 자를 신원할지니라” (잠언 31:8-9). 스스로를 변호할 수 없는 가장 작은 생명인 태아의 목소리가 되고, 죽음의 문턱에서 고통받는 이들의 손을 잡아주는 것이 바로 이 시대 교회가 감당해야 할 사명이다. 한국교회는 이제 생명의 위기라는 거대한 파도 앞에서 좌초할 것인지, 아니면 진리의 등대를 높이 드는 파수꾼이 될 것인지 중대한 기로에 서 있다. 교회가 다시 한번 시대의 등불이 되어 생명의 길을 밝히는 거룩한 사명을 온전히 감당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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