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문지기인가, 파괴의 조력자인가
월드미션신문 기자
작성일 2026-07-19 08:10
본문
국가의 심장부에서 울려 퍼진 한마디 발언이 한국 사회의 생명 윤리 의식에 차가운 파문을 던졌다. 대통령이 직접 ‘낙태 약물 도입’을 언급하며 그 사용을 의사의 양심과 재량에 맡기자고 제안한 것은, 단순히 하나의 정책 제안을 넘어 국가가 생명을 대하는 근본적인 철학의 붕괴를 예고하는 불길한 신호다. 국가는 국민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 존재하는 최후의 보루다. 그러나 그 국가가 가장 연약하고 스스로를 방어할 수 없는 태아의 생명을 ‘선택’과 ‘재량’의 문제로 치부하며, 그 존폐를 약물과 의사의 손에 넘기려 하는 것은 국가의 존재 이유를 스스로 부정하는 행위다.
이는 마치 홍수를 막아야 할 댐의 관리인이 스스로 댐에 구멍을 내며 ‘물의 흐름은 강물의 재량에 맡기자’고 말하는 것과 같다. 생명은 결코 선택의 대상이 될 수 없는 절대 가치이며, 국가는 그 가치를 수호할 무한 책임을 진다. ‘낙태 약물’이라는 의학적 용어 뒤에 가려진 것은 한 생명의 소멸이라는 엄중한 현실이다. 수정되는 순간 고유한 유전 정보를 지닌 한 인간의 여정은 시작된다. 이 작은 생명에게서 고동치는 심장의 소리를 외면하고, 그 존재를 약물로 지워버릴 권리를 논하는 사회는 이미 그 영혼에 깊은 병이 든 것이다.
20세기 가장 어두운 시절, 독일 나치 정권은 ‘살 가치가 없는 생명’이라는 이름 아래 장애인과 정신질환자들을 제거하는 ‘T4 프로그램’을 가동했다. 국가가 우생학적 잣대로 생명의 가치를 재단하고, 무력한 이들을 조직적으로 제거했던 이 끔찍한 역사 앞에서 신학자 디트리히 본회퍼는 단호히 저항했다. 그는 “교회는 희생자들을 위해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외치며, 국가의 폭력 앞에 침묵하는 것은 죄악임을 분명히 했다. 본회퍼에게 있어 국가의 역할은 강자의 편의를 돕는 것이 아니라, 가장 약한 자의 생명을 보호하는 것이었다. 오늘날 한국 사회가 마주한 이 논쟁은 본회퍼가 싸웠던 그 영적 전쟁의 연장선에 있다. 목소리 내지 못하는 태아는 이 시대의 가장 약한 자이며, 교회는 그들을 위한 유일한 변호인이 되어야 한다.
교회가 생명의 존엄성을 외치는 것은 정치적 구호나 감상적 주장이 아니다. 그것은 창조주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선포하는 신앙의 고백이다. 성경은 태초부터 생명의 주관자가 오직 하나님 한 분이심을 명백히 증언한다. 시편 기자의 고백은 어머니의 태 속에서 시작되는 생명의 신비를 이처럼 노래했다.
“주께서 내 내장을 지으시며 나의 모태에서 나를 만드셨나이다 내가 주께 감사하옴은 나를 지으심이 심히 기묘하심이라 주께서 하시는 일이 기이함을 내 영혼이 잘 아나이다 내가 은밀한 데서 지음을 받고 땅의 깊은 곳에서 기이하게 지음을 받은 때에 나의 형체가 주의 앞에 숨겨지지 못하였나이다 내 형질이 이루어지기 전에 주의 눈이 보셨으며 나를 위하여 정한 날이 하루도 되기 전에 주의 책에 다 기록이 되었나이다” (시편 139:13-16)
이제 한국 교회는 다시 한번 역사의 부름 앞에 섰다. 편리와 효율의 이름으로 생명을 경시하려는 시대의 흐름에 맞서, 변치 않는 진리의 닻을 내려야 한다. 국가는 생명을 파괴하는 도구의 도입을 논할 것이 아니라, 한 생명이라도 더 살릴 수 있는 정책과 문화를 조성하는 데 온 힘을 쏟아야 한다. 교회는 이 땅의 모든 태아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존귀한 생명임을 세상이 들을 때까지 외쳐야 할 예언자적 사명을 받았다. 이 싸움은 단순히 하나의 약물을 막아서는 것을 넘어, 이 민족의 심장에 하나님의 생명 존중 사상을 다시 새기는 거룩한 영적 전쟁이다.
이는 마치 홍수를 막아야 할 댐의 관리인이 스스로 댐에 구멍을 내며 ‘물의 흐름은 강물의 재량에 맡기자’고 말하는 것과 같다. 생명은 결코 선택의 대상이 될 수 없는 절대 가치이며, 국가는 그 가치를 수호할 무한 책임을 진다. ‘낙태 약물’이라는 의학적 용어 뒤에 가려진 것은 한 생명의 소멸이라는 엄중한 현실이다. 수정되는 순간 고유한 유전 정보를 지닌 한 인간의 여정은 시작된다. 이 작은 생명에게서 고동치는 심장의 소리를 외면하고, 그 존재를 약물로 지워버릴 권리를 논하는 사회는 이미 그 영혼에 깊은 병이 든 것이다.
20세기 가장 어두운 시절, 독일 나치 정권은 ‘살 가치가 없는 생명’이라는 이름 아래 장애인과 정신질환자들을 제거하는 ‘T4 프로그램’을 가동했다. 국가가 우생학적 잣대로 생명의 가치를 재단하고, 무력한 이들을 조직적으로 제거했던 이 끔찍한 역사 앞에서 신학자 디트리히 본회퍼는 단호히 저항했다. 그는 “교회는 희생자들을 위해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외치며, 국가의 폭력 앞에 침묵하는 것은 죄악임을 분명히 했다. 본회퍼에게 있어 국가의 역할은 강자의 편의를 돕는 것이 아니라, 가장 약한 자의 생명을 보호하는 것이었다. 오늘날 한국 사회가 마주한 이 논쟁은 본회퍼가 싸웠던 그 영적 전쟁의 연장선에 있다. 목소리 내지 못하는 태아는 이 시대의 가장 약한 자이며, 교회는 그들을 위한 유일한 변호인이 되어야 한다.
교회가 생명의 존엄성을 외치는 것은 정치적 구호나 감상적 주장이 아니다. 그것은 창조주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선포하는 신앙의 고백이다. 성경은 태초부터 생명의 주관자가 오직 하나님 한 분이심을 명백히 증언한다. 시편 기자의 고백은 어머니의 태 속에서 시작되는 생명의 신비를 이처럼 노래했다.
“주께서 내 내장을 지으시며 나의 모태에서 나를 만드셨나이다 내가 주께 감사하옴은 나를 지으심이 심히 기묘하심이라 주께서 하시는 일이 기이함을 내 영혼이 잘 아나이다 내가 은밀한 데서 지음을 받고 땅의 깊은 곳에서 기이하게 지음을 받은 때에 나의 형체가 주의 앞에 숨겨지지 못하였나이다 내 형질이 이루어지기 전에 주의 눈이 보셨으며 나를 위하여 정한 날이 하루도 되기 전에 주의 책에 다 기록이 되었나이다” (시편 139:13-16)
이제 한국 교회는 다시 한번 역사의 부름 앞에 섰다. 편리와 효율의 이름으로 생명을 경시하려는 시대의 흐름에 맞서, 변치 않는 진리의 닻을 내려야 한다. 국가는 생명을 파괴하는 도구의 도입을 논할 것이 아니라, 한 생명이라도 더 살릴 수 있는 정책과 문화를 조성하는 데 온 힘을 쏟아야 한다. 교회는 이 땅의 모든 태아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존귀한 생명임을 세상이 들을 때까지 외쳐야 할 예언자적 사명을 받았다. 이 싸움은 단순히 하나의 약물을 막아서는 것을 넘어, 이 민족의 심장에 하나님의 생명 존중 사상을 다시 새기는 거룩한 영적 전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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