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질을 향한 갈망, 그 메아리가 울려 퍼지다
월드미션신문 기자
작성일 2026-07-14 08:10
본문
최근 한국교회 안에서 의미심장한 두 개의 모임이 연이어 열렸다. 한국장로교총연합회는 ‘한국장로교의 날’을 통해 하나님 앞에서 교회의 본질 회복을 부르짖었고, 여러 교회가 연합한 여름산상성회에서는 ‘크리스천의 언어’를 되찾자는 외침이 뜨겁게 울려 퍼졌다. 이는 개별적인 행사를 넘어, 시대의 탁류 속에서 방향을 모색하는 한국교회의 깊은 영적 갈증이 터져 나온 소중한 메아리다.
언제부터인가 교회는 세상의 언어에 잠식당하기 시작했다. 복음의 절대적 가치와 능력 대신 세속적 성공주의와 기복신앙의 언어가 강단을 채웠고, 회개와 거룩함의 언어는 자기계발과 긍정의 힘이라는 세련된 심리학의 언어에 자리를 내주었다. 십자가의 길을 따르는 순교자적 신앙의 언어는, 어느덧 부와 명예를 추구하는 세상의 욕망과 뒤섞여 그 본연의 빛을 잃어버렸다. 우리는 화려한 예배의 형식과 거대한 조직의 외형은 갖추었을지 모르나, 정작 기독교 신앙의 심장과도 같은 고유의 언어, 그 본질의 힘을 상실한 채 표류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는 마치 16세기 종교개혁 직전의 유럽 교회를 떠올리게 한다. 당시 교회는 라틴어라는 권위의 언어로 성경을 독점했고, 면죄부 판매와 공로 사상이라는 그릇된 언어로 성도들을 기만했다. 복음의 언어는 사라지고 인간의 공로와 교회의 권위만이 남은 영적 암흑기였다. 바로 그때, 비텐베르크의 이름 없는 수사였던 마르틴 루터는 로마서 1장 17절의 말씀과 씨름하던 중 거대한 빛을 발견했다. ‘하나님의 의’가 인간의 행위로 획득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아 주어지는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이는 단순한 신학적 발견을 넘어, 잃어버렸던 ‘복음의 언어’를 되찾은 위대한 사건이었다. 이 회복된 언어가 루터의 손에 들려 ‘95개조 반박문’이 되어 비텐베르크 성교회 정문에 나붙었을 때, 유럽을 잠재웠던 거대한 영적 어둠에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오늘날 한국교회를 향한 본질 회복의 외침은, 바로 이와 같은 ‘언어의 회복’을 향한 요청이다. 이는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해 주신 하나님의 애끓는 음성과도 같다.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너희는 길에 서서 보며 옛적 길 곧 선한 길이 어디인지 알아보고 그 길로 가라 너희 심령이 평강을 얻으리라 하나 그들의 대답이 우리는 그리로 가지 않겠노라 하였으며” (예레미야 6:16).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옛적 길’, 곧 복음의 본질로 돌아오라고 명하신다. 그 길 위에 우리가 잃어버린 평강과 능력이 있음을 약속하신다.
장로교의 날과 연합성회에서 울려 퍼진 본질 회복의 목소리가 일회성 구호나 행사에 그쳐서는 안 된다. 이 메아리는 이제 한국교회 전체의 거대한 합창이 되어야 한다. 모든 강단에서, 모든 성도의 삶의 자리에서 세속의 언어를 걷어내고 십자가와 부활, 은혜와 진리라는 기독교 본연의 언어를 회복하는 운동이 일어나야 한다. 2027년 평양대부흥 120주년을 향한 기대가 진정한 영적 부흥으로 이어지기 위한 유일한 길은, 바로 이 ‘옛적 길’로 돌아가 잃어버린 우리의 언어를 되찾는 것뿐이다.
언제부터인가 교회는 세상의 언어에 잠식당하기 시작했다. 복음의 절대적 가치와 능력 대신 세속적 성공주의와 기복신앙의 언어가 강단을 채웠고, 회개와 거룩함의 언어는 자기계발과 긍정의 힘이라는 세련된 심리학의 언어에 자리를 내주었다. 십자가의 길을 따르는 순교자적 신앙의 언어는, 어느덧 부와 명예를 추구하는 세상의 욕망과 뒤섞여 그 본연의 빛을 잃어버렸다. 우리는 화려한 예배의 형식과 거대한 조직의 외형은 갖추었을지 모르나, 정작 기독교 신앙의 심장과도 같은 고유의 언어, 그 본질의 힘을 상실한 채 표류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는 마치 16세기 종교개혁 직전의 유럽 교회를 떠올리게 한다. 당시 교회는 라틴어라는 권위의 언어로 성경을 독점했고, 면죄부 판매와 공로 사상이라는 그릇된 언어로 성도들을 기만했다. 복음의 언어는 사라지고 인간의 공로와 교회의 권위만이 남은 영적 암흑기였다. 바로 그때, 비텐베르크의 이름 없는 수사였던 마르틴 루터는 로마서 1장 17절의 말씀과 씨름하던 중 거대한 빛을 발견했다. ‘하나님의 의’가 인간의 행위로 획득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아 주어지는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이는 단순한 신학적 발견을 넘어, 잃어버렸던 ‘복음의 언어’를 되찾은 위대한 사건이었다. 이 회복된 언어가 루터의 손에 들려 ‘95개조 반박문’이 되어 비텐베르크 성교회 정문에 나붙었을 때, 유럽을 잠재웠던 거대한 영적 어둠에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오늘날 한국교회를 향한 본질 회복의 외침은, 바로 이와 같은 ‘언어의 회복’을 향한 요청이다. 이는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해 주신 하나님의 애끓는 음성과도 같다.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너희는 길에 서서 보며 옛적 길 곧 선한 길이 어디인지 알아보고 그 길로 가라 너희 심령이 평강을 얻으리라 하나 그들의 대답이 우리는 그리로 가지 않겠노라 하였으며” (예레미야 6:16).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옛적 길’, 곧 복음의 본질로 돌아오라고 명하신다. 그 길 위에 우리가 잃어버린 평강과 능력이 있음을 약속하신다.
장로교의 날과 연합성회에서 울려 퍼진 본질 회복의 목소리가 일회성 구호나 행사에 그쳐서는 안 된다. 이 메아리는 이제 한국교회 전체의 거대한 합창이 되어야 한다. 모든 강단에서, 모든 성도의 삶의 자리에서 세속의 언어를 걷어내고 십자가와 부활, 은혜와 진리라는 기독교 본연의 언어를 회복하는 운동이 일어나야 한다. 2027년 평양대부흥 120주년을 향한 기대가 진정한 영적 부흥으로 이어지기 위한 유일한 길은, 바로 이 ‘옛적 길’로 돌아가 잃어버린 우리의 언어를 되찾는 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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