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 때문에 손해를 선택할 수 있나?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을 실천하며 살아가는 삶>
본문
몇 달 전, 비바람이 치던 날에 옆집의 아름드리 큰 나무가 바람에 쓰러지면서 우리 집에 큰 피해가 발생했었다. 다행히 인명피해는 없었지만 재물 피해는 상당했다. 그래서 옆집의 보험회사에 피해보상 접수를 했고, 몇 주가 지난 후에 보험회사에서 현장조사가 나왔다.
그 때까지 쓰러진 나무로 인해 창고의 지붕이 열려 있어서 창고 안에 있는 물품들 다수가 물에 젖거나 파손이 되어서 처음보다 피해는 더 커졌다. 보험회사에서 조사를 나온 사람은 무난하게 보상이 이루어 질 것이라면서 피해 물품과 현장 사진을 찍고 돌아가면서 보상이 이루어 질 때 까지 걱정하지 말고 기다리라고 했다.
그렇게 다시 몇 주가 지난 후에 옆집의 보험회사에서 전화가 왔고 같은 내용의 우편 메일이 도착했다. 그 내용을 보면 보험회사에서는 이번에 쓰러진 나무로 인한 재물파손에 대해서는 전혀 보상을 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이유인즉, 옆집의 주인이 이렇게 나무가 썩었으면 미리 나무를 잘라냈어야 하는데도 그렇게 하지 않았고 오히려 나무가 썩은 사실을 알지 못했다고 하는 것은 도무지 납득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게 나무의 주인이 자신의 의무를 다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 나무가 썩어서 바람에 쓰러져서 이웃에게 피해를 준 것은 분명하지만 보험으로는 커버(배상)를 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옆집의 보험회사에서 통보를 받고 며칠이 지났는데도 옆집에서는 아무런 대응이 없다. 분명 보험회사에서 옆집의 나무주인에게도 동일한 내용으로 통보를 했다고 했는데도 말이다. 어이가 없다고 생각하다가, 거기에 속상하다가, 옆집의 행동에 이해를 할 수 없다고 생각하다가, 그렇게 맘을 다스리고 있다가 며칠이 지난 후에 길을 가고 있는 옆집의 집주인을 만났다.
20여 년 전부터 알고 지내는 이웃이고 코리언-아메리컨, 즉 미국에 사는 한국사람이다. 그리고 나는 매번 옆집의 주변청소와 낙엽, 겨울에는 눈까지 치워준다. 그런데 그가 하는 말이 더욱 화가 난다. 자신도 어떠한 보상을 해 줄 수 없으니까 법적으로 소송을 하란다. 아버지~!, 어이가 없었다. 말로라도 싸우지 않기 위해서 맘을 다스리고 다음 대책을 강구해야 했다.
검찰청 검사로 근무하고 있는 큰아들의 법률적인 조언과 주변 사람들의 비슷한 경험에 의한 조언 등을 종합 해 보면 옆집의 집주인을 상대로 민사상 손해를 입증하는 증빙서류와 함께 소송을 제기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 후에 일어나는 일은 법적으로 진행을 해 봐야 알 수 있었다.
과거의 일이 다시 한 번 나의 머리에 떠올랐다. 몇 년 전에 법적으로 소송만 하면 현재 환율로 최하 50만불(약 7억원 이상)에서 100만불(14억원) 정도는 쉽게 찾아 올 수 있는 경우가 있었는데, 예수그리스도라는 이름 때문에 소송을 하지 않은 경우가 있었다.
지금 생각해도 아쉽고, 안타깝고, 속상하고, 때론 아깝고, 억울하다고, 후회도 하지만, 그럼에도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목사로서 참 잘했다는 생각을 하면서 하나님의 위로를 받으면서 지금은 다 잊고 살아가고 있는 불과 몇 년 전의 사건이다.
다시 기도제목이 생긴 것이다. 옆집의 집주인이 하는 말이나 행동을 보면 소송을 해야 한다. 그래야 금전적으로 손해 본 것을 어느 정도 보상 받을 수가 있다. 그리고 옆집의 집주인 말이나 행동에 경각심을 줄 수도 있다.
분명 내가 목회를 하고 있는 목사인 것을 아는 사람이 무례하게 말을 하고, 자신은 아무런 상관도 없는 것처럼 말과 행동을 한다. 분명히 자신(옆집)의 집에서 자란 나무가 썩었고, 그 나무를 미리 자르지 않아서 바람에 쓰러져 우리 집에 피해를 준 것이 팩트(사실)이고, 마땅히 우리에게 미안한 마음으로 말과 행동을 해야 하는데, 절대로 그렇지 않고 오히려 당당하게 법대로 하란다.
며칠을 고민하면서 기도하는데 하나님께서 마음에 평안을 주셨다. 나와 가족들이 입은 피해를 돈으로만 계산하지 말고 내가 겪을 맘고생도 계산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옆집과 소송을 하다보면 불쾌한 마음을 갖고 있으면서 얼굴을 붉혀야 하고, 자신은 아무런 잘못도 없다고 하는 사람과 말과 법으로 다툼을 한다는 것이 선뜻 마음에 허락되지가 않았다.
그리고 제일 중요한 것은? 목사가 성경대로 살아야 하는데, 소송을 한다는 것 자체가 마음에 허락지 않았다. 물론 내가 선택한 것이 무조건 옳다고는 할 수 없다. 그러나 나는 마음의 평안과 하나님의 위로를 선택했다. 그렇게 결단을 하고 나무가 쓰러져서 난장판을 만든 피해 현장을 스스로 정리하고, 나무를 치우고, 부서진 창고와 각종 비품들의 수리 작업에 들어갔다.
아름드리의 큰 나무를 자르는데 일반 건축용 전기톱으로는 도저히 불가능 했다. 하는 수 없이 나무를 자르는 특수 전기톱을 구입했다. 지붕에 올라서서 큰 나무를 자르고, 또 자르고, 가지치기를 하고, 하루 종일 씨름하다 보니 어느새 베어진 나무 잔해가 뒷마당에 한 트럭은 족히 쌓였다.
창고 안에 있는 것들도 모두 꺼내서 버릴 것은 버리고, 고쳐야 할 것은 한 쪽으로 치워놓고, 그렇게 정리를 하다보니까 나름대로 정리가 되어가고 있었다. 버려야 하는 것이 사용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았다.
지붕이 무너진 창고의 지붕을 뜯어놓고 쇠로 만들어진 틀은 용접기로 용접을 하고, 나무를 사다가 보강을 하고, 지붕에 씌울 재료를 사다가 지붕을 덮어 나가니까 어느새 새로 산 것보다는 조금 못하지만 나름대로 수리는 완벽하게 되었다.
아마도 보험회사에서 보상을 받으면 수 천불(수백만원)에서 수 만불(수천만원)은 받아야 했는데, 스스로 소송을 포기하고 내가 직접 원상복귀 시키기로 맘먹고 버릴 것은 버리고, 고칠 것은 고치면서 이마에 땀을 흘리며 온 가족이 매달려서 수리를 하다 보니 재료값과 공구 값으로 수 천불(수백만원)은 들었지만 어느새 완벽하게 수리가 되어서 예전과 비슷하게 정리가 되었다.
엄청나게 더운 날씨 임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일주일 내내 치우고 수리를 하면서 큰 소리의 소음이 나는데도 옆집의 집주인은 나몰라라 하면서 단 한 번도 나와 보지도 않았다.
옆집 주인도 교회에 다니고 있다. 그리고 미국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현직 선생님이다. 그 사람의 인성과 삶의 모습을 생각하니까 아쉽다. 안타깝다. 그리고 걱정도 된다. 사람이 살아 가는데는 돈과 법이 전부가 아닌데 말이다.
아무튼 옆집의 나무가 쓰러져서 피해를 입었던 그 사건은 온 가족이 합심해서 이마에 땀을 흘림으로 마무리가 되었고, 예수님 때문에 소송을 포기한 것은 스스로 참 잘했다는 생각으로 위로하며 이 사건을 마무리 했다.
스스로 생각하기에 목사로서 참 잘 선택했다. 예수님 때문에 손해를 선택한 것이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을 실천하며 살아가는 삶이라고 생각하기에 피해와 손해와 억울함을 감수하는 삶은 하나님께서 지켜보시며 삶의 내용까지도 계수 하실 것이라는 믿음으로 상처난 마음까지도 위로와 치유를 받았다. 그래서, 그러므로, 그런데도, 그렇기에, 그래도, 오늘도 할렐루야 ~~~!를 위해서 행함있는 믿음으로 살아간다.
“여호와 앞에 잠잠하고 참고 기다리라 자기 길이 형통하며 악한 꾀를 이루는 자 때문에 불평하지 말지어다 분을 그치고 노를 버리며 불평하지 말라 오히려 악을 만들 뿐이라 진실로 악을 행하는 자들은 끊어질 것이나 여호와를 소망하는 자들은 땅을 차지하리로다.”(시 37:7-9)
김연규 목사
부흥사
칼럼니스트
코람데오허브미션 대표
뉴욕비전교회 담임목사
dr.yeunkim@gmail.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