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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과 부활

월드미션 기자
작성일 2022-04-14 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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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인도의 카필라라는 작은 왕국의 왕자 싯다르타는 인간의 삶이라는 것이 태어나는 것, 병드는 것, 늙는 것, 그리고 죽는 것으로 엮어지는 고통스러운 것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어떻게 하면 이 고통의 수레바퀴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인지 깊이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그의 철학의 토대가 되는 것은 인도에서 발달된 윤회사상입니다. 모든 생명체는 죽음에 이르러서 다른 개체로 다시 태어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환생이라고 하는데, 끊임없이 반복되는 생명체들의 탄생과 죽음을 쉽게 설명하는 이론이 됩니다. 거기에 업보라는 개념이 추가되면서, 다음 생에서 지렁이나 까마귀 같은 비참한 개체로 환생하지 않기 위해서는 선행을 쌓아야 한다는 도덕적 규범을 갖춘 고등종교로 발달하게 되었습니다. 싯다르타는 그렇게 끊임없이 반복되는 윤회에서 벗어나는 해탈을 구원으로 상정했습니다.

그러나 윤회라는 것은 인간의 궁극적인 기원에 대해서 설명하지 못합니다. 윤회라는 거대한 운동을 유발하는 원인자가 무엇인지 말하지 않습니다. 또 윤회에 의해 생성된 각 개체간의 연속성과 연관성도 거의 설명되지 못합니다. 사람들은 종종 '전생에 내가 무슨 죄를 지었길래...' 이런 말을 합니다. 자신이 전생에 무엇이었고 어떤 죄를 지었는지를 전혀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결국 죄를 지은 전생의 개체와 현재 벌을 받고 있는 개체 사이에 아무런 연속성이 없습니다. 자신이 무슨 죄를 지었는지를 알아야 벌을 받아도 의미가 있고 합당한 것이지, 그것을 모른다면 죄 지은 사람과 벌 받는 사람이 서로 다른 객체에 불과할 뿐입니다. 그것이 설명되지 않기 때문에 현재의 고통스러운 삶은 알지도 못하는 전생의 업보라는 숙명론으로 흐르게 되는 오류를 범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우리 인간의 기원과 운명에 대해서 분명하게 밝혀 줍니다. 인간의 기원은 하나님의 창조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셨습니다. 인간은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는 인격적인 존재로 지음을 받았고, 하나님께 순종하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 그 본분이었습니다. 그것이 아니라면 인간이 존재할 이유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괜히 불순종하고 반역하는 골치 아픈 존재를 만드실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아담은 하나님께 불순종하고 범죄하는 선택을 하고 말았습니다. 그렇게 인류의 불행이 시작되었고, 인간에게는 죽음이라는 형벌이 내려졌습니다.

아담이 범죄한 것 때문에 모든 사람이 죽게 되었다는 데 대해 많은 사람들은 동의하지 못하거나 불만을 갖습니다. 왜 본 적도 없는 사람의 범죄 때문에 내가 죽어야 하는지, 내가 가담하지도 않은 범죄의 결과를 내가 책임져야 하는지 억울하게 생각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나는 내가 선택하지 않았지만 한국사람으로 태어났고, 내 의지와 상관없이 갈색 눈동자를 갖게 되었습니다. 아담은 하나님이 직접 지으신 사람으로서 인류의 조상입니다. 그 아담이 범죄함으로써 인간 세상에 죄가 들어왔고, 인간은 그 죄의 영향 아래 놓이게 되었습니다. 아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서 모든 사람이 죽음의 권세 아래 굴복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우리 인간의 불행이고, 고통의 원인입니다.

그렇게 사망 아래 있던 인류에게 복음이 선포되었습니다. 그들이 죽지 않고 다시 살 수 있다는 기쁜 소식이 들려졌습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셨다는 부활의 소식입니다. 아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사망이 생겨났는데, 이제 예수 그리스도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생명이 주어졌습니다. 예수님은 인간이 당해야 할 저주와 형벌을 대신 당하시고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죽은 것으로 끝나지 않고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그것은 우리도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부활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생명을 얻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예수님을 '마지막 아담'이라고 표현했습니다(고전 15:45).

한 사람으로 말미암은 결과가 모든 사람에게 미친다는 점에서 아담과 예수님의 역할은 똑같습니다. 그런데 그 두 사람의 영향이 우리에게 미치는 방식에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아담의 범죄로 모든 사람이 죽게 되는 관계에서는 사람들에게 선택권이 없습니다. 아담의 영향을 받아들이거나 거부할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는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다 사망의 권세 아래 놓이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에게 생명이 주어지는 일에는 사람들이 선택하게 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는다고 했는데, 실제로 모든 사람이 삶을 얻는 것은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속죄는 모든 사람의 죄를 대신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속죄의 능력보다 죄 용서받아야 할 사람이 더 많아서, 용량이 초과되는 만큼의 사람들은 구원받지 못하는 것이 아닙니다. 단지 사람들이 그 영향을 받아들이기로 선택할 수도 있고, 거부할 수도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삶을 얻게 될 수 있지만,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만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삶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최성균 목사(동백지구촌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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