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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가망신과 금란교회

최고관리자 기자
작성일 2026-06-23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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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치 정권의 폭거에 맞서 신앙의 양심을 지키다 순교한 디트리히 본회퍼(Dietrich Bonhoeffer, 1906~1945) 목사의 삶과 신앙은 오늘 우리에게 큰 울림을 줍니다.

그는 20세기 개신교 신학자이자 목사로, 히틀러의 나치 정권에 정면으로 저항하다가 전쟁 종료 직전 처형당했습니다. 그는 말에만 머무르는 신앙이 아닌, 행동하는 신앙이 무엇인지를 삶과 죽음으로 증명했습니다.

본회퍼는 독일의 저명한 정신과 의사 가문의 아들로 태어나 24세라는 젊은 나이에 베를린 대학교에서 신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교수 자격을 얻을 만큼 천재적인 신학자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1933년 히틀러가 집권하면서 그의 삶은 완전히 바뀝니다. 나치가 교회를 장악하고 유대인을 박해하기 시작하자, 본회퍼는 히틀러를 우상화하는 관제 교회에 맞서 마틴 니뢸러 목사 등과 함께 고백교회(Bekennende Kirche)를 설립하며 본격적인 반 나치 운동에 뛰어들었습니다.

“미친 운전사의 마차에서 뛰어내려라.”

본회퍼의 저항 정신을 가장 잘 나타내는 유명한 비유가 있습니다.

“미친 운전사가 차를 몰며 사람들을 치고 있다면, 목사의 임무는 희생자들의 장례식을 치러주는 것뿐만 아니라, 그 자동차의 바퀴를 붙잡아 멈추게 하는 것이다.”

그는 단순히 국가의 폭력에 희생당하는 이들을 위로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폭력의 근원인 히틀러를 제거하고 정권을 타도하는 것이 기독교인의 진짜 의무라고 믿었습니다. 평화주의자였던 그가 이처럼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은 그것이 더 큰 악을 막는 유일한 의로운 범죄라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1943년 4월, 본회퍼는 결국 게슈타포 비밀경찰에 체포되었습니다. 그는 테겔 감옥 등에 수감되어 있는 동안에도 절망하지 않고 수많은 편지와 글을 남겼습니다.

1944년 7월, 히틀러 암살 시도가 최종 실패로 끝나면서 본회퍼의 암살 모의 가담 증거가 발각되었습니다. 결국 그가 서른아홉 살이 되던 해이자 종전을 단 몇 주 앞둔 1945년 4월 9일, 플로센뷔르크 수용소에서 교수형으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그는 사형대 앞에서 무릎을 꿇고 깊이 기도한 후, 의연하고 평온하게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그의 순교는 패가망신이 아니라 가짜 애국주의와 광기에 물들었던 독일 역사 속에서 인류의 양심과 참된 신앙의 가치를 지켜낸 한 줄기 빛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목사님이 처형당한 20일이 지난 후, 그해 4월 30일 히틀러는 자살하였으며, 또 일주일 후 독일은 항복(5.7)하였습니다. “이 땅에 마귀 들끓어 우리를 삼키려 하나 겁내지 말고 섰어라. 진리로 이기리로다. 친척과 재물과 명예와 생명을 다 뺏긴다 해도 진리는 살아서 그 나라 영원하리라” (585장 3절) 패가망신을 두려워하지 않는 금란교회의 의로운 항쟁에 하나님이 함께하심을 믿습니다.

노재환 목사 

(· ROTC세계선교교회 담임, ·ROTC목사회 직전 회장, ·전 본지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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