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을 통해 용서가 이루어지니 기도와 감사가 넘칩니다”
정직과 성실을 사훈으로 하나님의 기업 만들어 가는 (주)티지와이 대표 김재곤 장로(염광장로교회)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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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치소에서 우연히 발견한 작은 성경책 하나가 한 사람의 인생을 바꿨다.
전국에 800여 곳의 가맹점을 운영하는 가마치통닭, 그 유통업을 진행하고 있는 (주)티지와이 대표 김재곤 장로의 신앙의 삶은 구치소에서 읽은 성경 한 구절에서 시작됐다.
그 성경에서 발견한 ‘용서’, 그리고 ‘기도’라는 단어는 힘든 삶을 살아온 한 사람의 인생을 변화시키기에 충분했다.
김재곤 장로는 초등학교 시절 서울로 올라와 15살 때 연탄가스 사고로 부모님을 잃고 하루아침에 고아가 되면서 아직 어리광을 부릴 나이에 일터에 뛰어들 수밖에 없었던 삶을 살았다.
남대문 시장에서 닭 장사를 하는 집안 형님이 같이 일하자고 하셔서 16살에 남대문 지하상가 닭 가게에서 일하기 시작했고 26살에 동창의 권유로 안암동에 있는 영암장로교회에 처음 발길을 디딘 것이 교회와의 첫 인연이었다.
서울로 와서 다녔던 학교가 미션스쿨이었기 때문에 기독교에 대한 얕은 지식은 있었지만, 교회에 출석하는 것은 영암장로교회가 처음이었다. 그럼에도 누군가 자신을 기다린다는 마음에 매주 빠지지 않고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 또한 좌절되었다. 택시가 일으킨 교통사고를 김 장로에게 덮어씌우면서 억울하게 구치소에 들어가게 되면서 자신의 꿈이 또다시 꺾여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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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살아오면서 15살 이후 힘겹게 살아왔고 겨우 자신의 미래를 안정되게 살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억울하게 누명을 쓰면서 그 길 마저 끊겼다. 마음에 복수심이 일었다. ‘내가 이곳을 나가면 나에게 누명을 씌운 사람에게 해코지하고 나도 삶을 마감하리라.’ 자기 삶에 대한 회의도 들었고 희망도 잃었다.
처절하게 절망하고 있을 때 눈에 들어온 것이 유치장 한쪽에 있던 ‘포켓 성경’이었다.
마태복음 6장 14~15절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면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의 잘못을 용서하시려니와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
로마서 12장 19절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하나님께서는 두 절의 성경 말씀을 통해 김재곤 장로를 녹이기 시작했다. 분노에 가득했던, 삶에 대해 절망했던 김 장로의 마음에 ‘용서’라는 마음을 허락하셨다.
“하나님의 특별한 간섭이었습니다. 처음 교회를 가게 된 것도, 그리고 제가 있던 유치장에 성경책이 있었던 것도 그 모든 것이 하나님의 간섭이었습니다. 그 성경 말씀은 지금도 제 삶에 꼭 필요한 교훈이 되어 나를 지켜주었습니다. 나를 힘들게 했었던 사람들을 용서하였더니 오히려 내 편이 되어주고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는 힘을 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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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울한 누명을 쓰고 구치소에 들어갔지만, 그를 신앙인으로 성장시키는 중요한 시점이 되었다. 출소 후 다시 일도 시작했고 신앙생활도 다시 시작했다. 그러고는 하나님께서 주신 배필도 맞이하게 되었고 재정적으로도 안정되게 되었다.
그래도 신앙생활 자체가 변하지는 못했다. 하나님을 향한 마음은 생겼지만, 자신이 가지고 있던 습관 같은 행동은 여전히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그러던 와중에 또 다른 시련이 김 장로를 찾아왔다.
첫딸이 경련을 심하게 해서 병원에 갔더니 악성 관절과 뇌성마비 진단을 받은 일이었다. 병원에서는 2년 이상을 살기 힘들다는 판정을 받았고 당시 출석교회였던 염광교회에서 함께 다녔던 집사님의 소개로 딸과 기도원에 들어가 금식하고 기도하는 가운데 눈물이 멈출 줄 모르고 흐르면서 자신이 말씀이 귀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김 장로만 변화를 맞이한 것은 아니었다. 김 장로의 딸이 기도원에서 기도를 받았는데 눈에 초점을 맞추고 몸에 조금씩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고 15일간의 시간이 지나 집으로 돌아왔을 때는 딸이 평생 처음으로 걸음마를 하는 것을 체험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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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성령께서 내 안에 들어오신 것을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그 뒤로는 담배도 다 끊고 노름하는 친구를 불러 다시 만날 일 없다고 선언도 하고 오히려 그들에게 신앙을 가질 것을 권유하면서 변화된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온전한 주일성수, 십일조 생활, 교회를 중심으로 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 그저 알고 있었던 하나님을 만나게 된 순간이었습니다.”
모든 공 예배에 참석했고 전도 훈련, 주일학교 교사, 헌신과 봉사의 삶이 그렇게 즐거울 수가 없었다.
그 뒤는 모든 것이 잘되는 것 같았고 2011년 좋은 직장에서 퇴사하면서 남은 삶을 여유롭게 보내고 싶어서 충주에 1만 평 부지의 땅을 사서 ‘선교농원 법인’을 만들고자 했다. 양계 사업을 하면서 선교사들을 후원하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마을에서도 멀리 떨어져 있었고 법적으로는 아무런 하자가 없었기 때문에 설계도 이상 없이 나왔는데 마을 사람들로부터 민원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주민들과 오랜 기간 대화를 하면서 설득해 보려고 하고 법에서도 승소했지만, 지역 주민들의 반대에 결국 그 일은 할 수가 없었다.
또다시 김 장로가 선택한 것은 ‘기도’였다. ‘강남금식기도원’에 일주일간 기도에 매여 살았는데 마음에 답답함이 풀리지 않았다. 결국 딱 30분만 더 기도하고 내려가자고 하고 기도할 때 그 순간 마음에 평안이 왔고 그 기도가 다시 김 장로를 일으켜 세웠다.
“이때 하나님께서 저에게 두 단어를 생각나게 하셨습니다. 하나는 코람데오, 또 한 단어는 성령 충만이라는 단어였습니다. 이 두 단어를 두 기둥처럼 제 삶에 세워놓고 이 말씀으로 그 어려운 시기를 견딜 수 있었습니다. 저는 코람데오, 성령 충만을 외치면서 기도하면 반드시 새 길을 주실 거라는 믿음으로 계속 간구했고 하나님께서 그 간구를 들으시고 전혀 제가 예상치 못한 길을 예비하고 계셨습니다.”
1년 동안 기도원을 오가며 기도 생활을 이어가던 중 김포에 있는 도계장에서 도와달라는 요청이 왔고 이를 하나님의 응답이라고 생각한 김 장로는 두말하지 않고 김포로 달려갔다.
3년간 김 장로의 노력으로 적자였던 도계장은 흑자로 전환되었고 회사는 확장을 앞두고 있었다. 그런데 그 도계장의 회장이 갑자기 국회의원에 당선이 되면서 회사를 축소해야 한다는 통보를 받았고 돈은 없었지만, 그 회사를 인수하겠다는 결정을 내렸다. 부족한 돈은 회장에게 빌리기로 했고 13억 원의 미수금 중 3억 원을 먼저 주고, 나머지 10억 원을 10개월 후까지 받아주기로 한 뒤 준비를 거쳐 2016년 1월 본격적으로 사업을 시작했다. 가마치통닭의 처음이었다.
16살의 나이에 처음으로 접한 닭 사업이 우여곡절 끝에 김 장로를 이 길로 인도했다.
2015년 생산 유통회사인 (주)티와이가 설립되었고 2016년에는 가마치통닭 프랜차이즈 회장인 (주)티지와이가 설립되었다. 2019년에는 경기도 이천의 오천 농장에서 종계 사업을, 2020년에는 충주에 육가공 공장을 가동하게 되었다. 그리고 2021년 예산의 본사에 도계 및 가공장이 설립되었다.
이제는 가마치통닭으로 유명한, ㈜티와이, ㈜티지와이, 선교농원(주), TGY fnb, 오천농장 등 5개 계열사가 연 매출액이 2천억 원을 넘기는 건실한 기업으로 성장해 있다.
사업이 성공해 있지만 김 장로의 마음은 변함이 없다.
㈜티와이는 영문으로 Thank you의 첫 글자를 따온 것으로 ‘감사’를, ㈜티지와이는 영문으로 Thank God & You의 첫 글자를 따온 것으로 ‘하나님과 고객에 대한 감사’를 담고 있다. 감사를 강조한다.
김재곤 장로가 경영하면서 꼭 지켜왔던 말씀은 잠언 11장 3절 “정직한 자의 성실은 자기를 인도하거니와”이다. 오늘날 사업과 정직은 같이 갈 수 없다고 말하지만 김 장로는 오히려 정직이 회사를 올바르게 이끌어 갈 수 있다고 강조한다.
“거짓말로 남을 속이면 결국 그 거짓이 저에게 돌아옵니다. 거짓말을 하지 않으면 사기꾼이 못 덤벼듭니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정직한 경영이 가능해집니다.”
그래서 ㈜티와이의 사훈도 ‘정직과 성실’이다. 김재곤 장로의 회사명은 모두 기독교의 가치와 일맥상통한 모습을 보인다.

이 마음을 붙잡기 위해 김 장로는 매일 잠언서를 읽고 있다고 한다. 총 31장인 잠언서를 매일 한 장씩 읽으면서 자신을 다잡고 신앙 안에서 사는 것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가장 우선되어야 한다고 다짐한다.
2011년 김 장로가 처음 선교농원을 세울 때 김 장로가 계획한 것은 선교농원을 통해 선교사 10명을 후원하는 일이었다. 그 마음이 변치 않아 지금은 매년 선교사 5명과 농어촌교회 5개 교회를 선정해 열 군데를 후원해서 10년 동안 100군데를 후원하겠다는 목표 세웠고 올해로 벌써 110곳을 후원하면서 일찌감치 초과 달성을 했다.
또 은퇴선교사들에 관한 관심도 높아 커피숍 같은 것을 만들어서 은퇴하신 선교사님들이 운영하면서 여생을 보낼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다는 포부도 밝혔다.
“개인적으로 선교사님들의 자녀나 목회자들의 자녀가 신학을 하기를 바랍니다. 그들이 보고 느끼면서 생각한 것을 선교나 목회에 반영한다면 더 좋은 선교와 목회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오지에 있는 선교사님들을 자녀 교육이 어려운 분들이 많은데 자녀 교육을 위해 등록금을 마련하는 계획도 구상 중입니다.”
김 장로가 관심이 있는 또 하나의 사역은 기드온 사역이다. 기드온 사역은 전 세계적으로 성경을 무료로 보급하는 국제 기드온협회가 진행하는 사역으로 호텔, 모텔, 군부대, 경찰서, 병원, 교도소, 학교 등 성경을 여러 기관에 비치하고 배부하는 사역을 전개하고 있다. 김재곤 장로가 구치소에서 본 포켓 성경이 바로 기드온 사역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당연히 김재곤 장로는 억울하게 구치소에 갇혀 있을 때 기드온협회의 성경을 읽으며 용서의 길을 찾았던 기억을 일생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기에 자신이 경험했던 ‘성경의 능력’을 전해야 한다는 비전을 가지게 되었고 이 일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사역에 임하고 있다.
그리고 김재곤 장로가 무엇보다 관심이 있는 사역은 장애인 사역이다. 자기 큰딸이 장애인이기 때문에 장애인의 고통, 또 장애인 가족들의 어려움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저는 단 한 번도 저의 딸을 숨겨본 적이 없습니다. 늘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이고 축복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더 장애우 가정에 관심을 두고 그들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현재 김재곤 장로는 어려운 장애우 가정 10가정을 선별하여 매월 학비와 식비 등 생활비를 돕고 있다. 처음에는 장애인 센터를 만들어서 섬기는 역할을 하고자 했지만, 그 일은 너무 많은 시간이 들고 보다 직접적인 도움을 줘야 한다는 생각에 장애인의 부모들이 생활비 걱정하지 않도록 생활비를 지원하는 사역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생각에 10명을 선정, 생활비의 일정부분을 지원하고 있다.
50년 전 15살에 고아가 된 김재곤 장로가 지금은 연 매출이 2,000억 원이 넘는 곳의 대표로 일할 수 있었던 이유는 원망과 복수가 말씀을 통해 감사와 용서로 바뀌는 축복의 길이 있었기 때문이다.
“용서하지 못하면 하나님과의 관계가 막혀서 통할 수 없습니다. 용서는 모든 닫힌 관계를 열어주는 통로입니다. 용서는 깨닫는 사람이 먼저 하는 것입니다. 실수한 상대가 먼저 찾아오기는 어렵습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우리에게 먼저 찾아오신 것입니다. 제가 빈손으로 용서의 축복을 받았다면 여러분도 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