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땅의 흙이 되라’하셔도 순종하고 가야죠”
인터뷰 : 국내 2기 사역 마치고 선교지로 떠나는 계인철 목사
페이지 정보
월드미션 기자 작성일23-05-29 16:03본문
문화를 변화시키는 목사. 계인철 목사를 바라보면서 드는 가장 먼저 생각되는 말이다. 서울과 안산에서 개척교회를 했을 때도, 안산에서의 사역을 마무리하고 충청남도 홍성군에 위치한 광천으로 사역지를 옮겼을 때도 계인철 목사는 늘 교회 안의 문화를 바꾸는 데 주력했다. 옮기는 사역지마다 인간중심의 문화를 하나님 중심의 문화로 송두리째 바꿔온 계인철 목사는 광천 사역을 마무리하고 이제 사역지를 선교지로 옮긴다. 비교적 성공적인 사역을 해오던 계인철 목사가 국내 사역을 마무리하고 선교지라는 어려운 선택을 한 이유를 들어본다.
<편집자 주>
1. 어떤 마음으로 선교지를 선택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약 15년 전쯤, 서울 마포구 합정동에 있는 외국인 선교사 묘역을 간 적이 있습니다. 묘역은 총 9개 묘역으로 나누어져 있었는데, 그중 다른 묘비에 비해 작고 초라한 묘비들이 수십 개가 세워져 있는 한 묘역이 있었습니다. 그 묘역은 다름 아닌 출생 1년 이내에 사망한 65명의 어린 유아들도 선교사인 부모를 따라왔다가 채 피기도 전에 풍토병 등 여러 질병에 걸려 죽어 흙이 된 유아들의 묘역이었습니다. 너무도 안타까웠습니다. 또 다른 곳에는 선교사의 부인이 잠들어 있었습니다. 이 모습을 지켜보면서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뜨거운 책임감, 이 빚을 누군가는 갚아야 하지 않을까, 이 땅에 흙이 된 이들의 숭고함을 헛되게 하지 않기 위해 나도 이들처럼 다른 나라, 복음이 절실한 나라로 가서 복음을 전하다 그 땅에 흙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거룩한 부담이 가슴을 터트릴 듯 밀려 들어왔습니다. 그렇게 가슴 속에 잉태된 작은 불씨는 이후 선교지를 다니면서 점점 자라 어느새 기도가 되었고, 그 기도는 사명이 되었습니다. 선교지의 어린 생명들을 보면서 그들이 예수그리스도를 영접하게 되었을 때, 장차 그들에 의해 이루어지게 될 그 땅들을 상상하는 것은 너무 큰 기쁨이었고, 반드시 그렇게 하고 싶은 간절함이 선교사로의 길을 나서게 했습니다.
2. 교회를 개척하시기도 하시고 또 어려운 교회를 맡아 안정된 교회로 변모시키기도 하시는 등 인정받는 목회를 해오셨는데, 선교지는 또 다른 개척지가 될 수 있다고 봅니다. 어떤 목회 철학을 가지고 목회를 해오셨으며 또 선교지에서는 어떤 방향을 중점적으로 강조하실지 말씀해 주시며 감사하겠습니다.
올해로 35년 목회를 했습니다. 선교의 비전을 품은 이후 저는 목회 은퇴는 없다고 선언했습니다. 그 이유는 목회를 목회와 은퇴로의 구분이 아닌 1기 2기 3기로 나누어 목회를 구분했기 때문입니다. 1기는 개척교회 시기로 서울과 안산에 두 개 교회를 개척하였습니다. 2기는 기존 교회 목회로 광천중앙교회를 거처 현재 천북제일교회를 목회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3기는 선교지에서 선교하는 목회입니다. 주님이 부르시는 그 날까지 어느 하늘 아래 땅이 될지 모르지만 부르시는 날 그 땅의 흙이 되려고 합니다. 저는 오직 말씀과 기도라는 ‘두 레일’의 목회를 해 왔습니다. 목사, 목회, 교회, 성도 등의 기차가 말씀과 기도라는 두 레일 위를 달릴 때만 정상적으로 목적지에 이르게 된다고 믿습니다. 물론 시대에 따라 다양한 문화적 적용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어떤 것도 말씀과 기도가 그 중심이 되지 않으면 결국에는 변질된 목회가 되고 그 안에서 타락한 교회와 성도를 만들게 됩니다. 제 의견에 반대하는 분들도 있겠지만 저는 ‘두 레일목회’를 하면서 35년을 흔들림 없이 달려왔고, 그러한 가운데 교회는 든든하게 세워져 성도들도 복음적인 성도들이 되었습니다. 물론 목회도 중심을 지켰습니다. 선교지에서도 ‘레일선교(목회)’를 할 것입니다. 방법과 제도도 중요하겠지만 그 중심은 말씀이어야 하고 기도여야 하기 때문입니다. 선교지에서 성령의 인도와 역사하심 가운데 말씀과 기도를 통해 구원의 역사를 이루며, 심령을 부흥시키는 일은 말씀을 통해 임재하시고, 그 뜻을 나타내시며, 역사하시는 주님을 경험시키고, 기도를 통해 주님의 세계를 더 깊이 경험하게 하면서 영혼들을 구원하고, 교회들을 세워나가 동남아를 복음화하려 합니다.
3. 선교지로 필리핀을 정하신 이유와 필리핀에서 어떤 사역을 계획하고 계시는지요?
동남아는 중북부로는 불교국가들이고, 남쪽으로는 이슬람국가, 필리핀은 가톨릭국가입니다. 하지만 종교적인 이유로 필리핀을 선택한 것은 아닙니다. 동남아 선교라는 큰 대어를 낚기 위해 필리핀 사람들을 도구로 쓰고자 한 것입니다. 몰몬교가 세계 선교를 하는 방식 또는 도구 가운데 하나가 영어입니다. 거기서 아이디어를 얻었습니다. 필리핀은 스페인을 통해서는 종교(가톨릭)를, 미국을 통해서는 언어(영어)를 얻었습니다. 저는 바로 이 영어가 동남아 선교를 위해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필리핀 그리스도인 중 선교의 소명자들을 발굴하여 선교사 훈련을 거쳐 파송하는데, 영어를 도구로 사용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영어는 오직 영어 성경으로만 가르칩니다. 실제로 현재 실험적으로 캄보디아와 라오스에 파송하여 진행하고 있는데, 아주 좋은 결과를 얻고 있습니다. 특히 라오스의 예를 하나 들면, 우리나라로 비유하면 절 주지인 분이 영어를 배우겠다고 찾아왔다가 성경으로 영어를 배우는 사이 예수님을 영접하였습니다. 이런 일은 이제 시작에 불과합니다. 본격적으로 집중 훈련을 시켜 파송하면 더 놀라운 일들이 일어날 것이고, 그들로 가정교회를 거쳐 일반적인 교회로 나아가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필리핀에서의 사역은 교회 세움의 사역은 기본으로 하되, 현지교회 목회자들을 위한 신학교육이 절실함으로 목회연구원을 세워 바른 신학을 가르쳐 바른 목회를 할 수 있도록 돕는 일과 필리핀의 다음세대인 어린아이, 학생, 청년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이미 기성세대는 가톨릭을 비롯한 세속 문화에 물들어 쉽지 않다고 하더라도 그들과 다른 다음세대들 중심에 예수그리스도를 심어주면 예수그리스도가 이끌어가는 인생을 살게 될 것이고 그들이 결국 성인이 되어 그 나라의 주체가 되는 날, 자연스럽게 가톨릭국가가 기독교 국가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가면 바로 섬기게 될 교회(Faith Church)도 현재 청소년이 100명이고 성인이 약 40명입니다. 이것만 보아도 희망이 넘칩니다. 교회 부흥 운동과 목회자 영성운동을 일으켜 성경적인 참된 부흥의 역사를 이룰 것이며, 마을 살리기를 하려고 합니다. 빈부의 격차가 심하여 가난한 지역은 한 끼의 양식을 걱정해야 합니다.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보니 가정이 무너지고 자녀교육이 제대로 되지 않음으로 부모나 자녀의 삶의 질이 너무 낮은데, 문제는 이러한 가난으로 인한 삶이 대를 이어 계속된다는 것입니다. 교회를 중심으로 그들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마을 사람들이 공동으로 할 수 있는 어떤 사업을 만들어(예:빵 공장 등) 그곳에서 일하게 함을 통해 일정한 노동의 대가를 얻게 하고 자녀들에게는 장학금을 지급하여 정상적인 학업을 도와 미래를 준비시켜 주는 것입니다. 그들은 그리스도인으로 성장할 것이고, 결국은 그들은 그 땅을 복음화함과 동시에 제자로 살 것입니다. 또 그들 중에는 선교사는 물론 국가의 지도자도 나올 것입니다. 그리고 가난한 자들을 위한 응급병원, 미혼모들을 위한 돌봄 프로그램과 시설을 통해 정상적인 사회인으로 살아가게 하면서 미혼모와 아이가 예수님을 믿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 외에도 여러 사역들을 기도하면서 준비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아주 심각한 재앙이 될 기후 문제로 인한 가뭄, 홍수 등에 대비하여 요셉창고 같은 사역도 기도하고 있습니다. 이 또한 선교의 귀한 사역이 될 것입니다.
4. 목회 중 가족의 협력과 희생이 적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선교지로 향한 부분도 쉽지 않은 결정이셨을 텐데.
목회 중 자녀들에 대해 충분한 지원을 하지 못한 것이 지금도 마음에 걸립니다. 오직 목회에 저와 아내는 전적으로 헌신해왔습니다. 그 사이 아이들은 많은 희생을 했습니다. 그런데도 두 자녀가 아주 잘 자라주었습니다. 35년의 목회 속에 두 자녀는 성장하여 신학교를 졸업하고 목회를 꿈꾸는 가정을 이루었습니다. 저와 아내도 남모르는 목회적 궁핍과 눈물, 아픔들이 참 많이 있었습니다. 어떤 분이 말한 것처럼 이제는 목회도 괜찮고 은퇴도 얼마 남지 않았는데 좀 편히 목회하다 은퇴하고 쉬는 것도 어떤 면에서는 그동안의 목회에 대한 보상이 될 수도 있지만, 저와 아내는 주님의 부르심에 언제든지 순종해왔습니다. 신학교 때 가장 많이 불렀던 ‘아골 골짝 빈들에도 복음 들고 가오리다’라는 찬송을 가능한 지금까지 실천하려 했습니다. 주가 부르시고 가라고 하시는 곳이면 어떤 조건을 따져 본 적이 없습니다. 주의 종이기에 무조건 순종하여 오늘에 이른 것처럼, 이제 선교지로 가서 그 땅의 흙이 되라 하시기에 쉽지 않은 고난의 길이 될지라도 이 또한 순종합니다. 종은 순종할 때 가장 아름답고 행복합니다.
4. 그래도 천북지역에서의 목회 마무리가 아쉬움이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기억에 남는 내용과 앞으로의 천북제일교회가 어떤 교회로 남기를 원하십니까?
설립 62주년이 된 교회로부터 갑자기 청빙을 받고 기도하는 중에 주님의 부르심을 확인한 후 부임했습니다. 부임하면서부터 많은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설립 순간부터 있었어야 하는 것이 62년을 지나오면서까지 없었던 것, 반드시 있어야 하는 것에 모든 성도를 참여시키는 목회적 부분들, 침체된 영적인 것들을 다시 끌어 올리는 일 등 산적한 문제들이 그동안의 저의 목회를 테스트하는 것 같았습니다. 거기에다 코로나19까지 겹쳤습니다. 각종 시기와 모함, 거짓들을 묵묵히 기도하면서 오직 말씀을 전하고 성도들이 말씀과 기도로 삶을 이루기를 힘쓰며 3년여를 달려왔습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