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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 복음화의 뿌리 ‘부위렴’을 말하다
제1회 전킨 강좌 열려, 백종근 목사, “열매 거둔 용장” 선교사 삶 조명

최고관리자 기자
작성일 2026-10-23 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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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 선교의 초석을 다진 미국 남장로교 부위렴 선교사의 삶과 사역을 조명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군산전킨기념사업회는 2026년 10월 12일(월) 세미나실에서 ‘제1회 전킨 강좌’와 백종근 목사의 저서 『빼앗긴 들판에 복음을 심다』 출판기념회를 성황리에 개최했다.

강사로 나선 백종근 목사(『빼앗긴 들판에 복음을 심다』 저자)는 군산 출신으로, 한양대학교 공과대학과 대학원을 졸업하고 산업연구원(KIET) 책임연구원을 지냈으며, 오스틴 장로회신학대학교 대학원을 마친 뒤 커버넌트 노회(Covenant Presbytery)에서 목사 안수를 받았다. 이후 비버튼한인장로교회에서 은퇴 목사로 사역해 왔다. 이날 강좌는 오전 11시 출판기념회를 시작으로, 낮 12시 오찬, 오후 1시 작가와의 만남 순으로 진행됐다.

강좌의 중심 주제는 군산 선교의 기초를 놓은 미국 남장로교 선교사 부위렴(William F. Bull, 한국명 불)이었다. 백 목사는 군산 선교 역사에서 전킨과 드루 선교사가 1895년 수덕산에서 복음을 전하며 척박한 땅을 개간했다면, 부위렴 선교사는 그 밭에 씨를 뿌리고 가꾸어 열매를 거둔 완성자였다고 설명했다. 부위렴 선교사는 1899년 군산선교부에 합류해 1941년 일제에 의해 강제 추방될 때까지 40여 년간 군산과 호남 지역에서 활동했다.

백 목사는 군산 선교를 이끈 세 명의 ‘윌리엄’을 시기별로 비교했다. 전킨 선교사(전위렴, 1892~1908)는 초막 같은 교회를 세우고 의료 선교의 기초를 닦은 ‘씨를 뿌린 덕장’으로, 하위렴 선교사(1899~1928)는 사경회와 교사훈련소를 체계화하고 영명학교 중등과정을 개설해 선교부 체제를 안정시킨 ‘토대를 다진 지장’으로 소개됐다. 이어 부위렴 선교사(1899~1939)는 강력한 대중 전도와 교회 진흥운동을 펼쳐 실질적인 복음화의 열매를 거둔 ‘열매를 거둔 용장’으로 평가받았다.

부위렴 선교사의 사역 방식도 구체적으로 소개됐다. 그는 선교부 안에 교회, 병원, 학교를 함께 세우는 팀 사역을 펼쳤고, 금강과 만경강을 따라 전도선을 띄우는 수로 선교에도 힘썼다. 미국 대학 시절 야구 선수 겸 코치였던 경험을 살려 자전거, 테니스, 빙상 등 스포츠를 보급했으며, 전국 최초로 12인조 브라스밴드를 조직해 천막 전도에 활용했다. 백 목사는 그가 나라를 잃은 조선을 살리는 길을 구령운동, 곧 영혼 구원에서 찾았다고 설명했다. 또한, 1919년 군산 3·1 만세운동 당시에는 일제의 잔혹한 진압 실상을 비밀 서신을 통해 해외에 알린 사실도 소개됐다.

일제 말기 부위렴 선교사는 큰 시련을 겪었다. 일제가 신사참배를 강요하자 남장로교 선교부는 우상숭배를 강요받으며 기독교 교육을 할 수 없다는 입장을 세우고 학교 폐교로 맞섰고, 이로 인해 선교 활동이 전면 마비됐다. 노회에서조차 사역지를 잃은 그는 일제의 제재가 비교적 덜했던 여수 애양원 등 한센인 공동체를 찾아 마지막까지 복음을 전했다. 결국 1941년 태평양 전쟁 발발 직전 강제 추방되며 40여 년의 사역을 마쳤다.

백 목사는 강좌를 마무리하며 “오늘날 군산 지역이 누리는 높은 복음화율은 우리가 잘나서가 아니라, 목숨을 걸고 헌신했던 선교사들의 피와 눈물이 녹아든 결과”라며 역사적 정체성을 계승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강좌는 군산 복음화의 뿌리를 되짚고 선교사의 헌신을 오늘의 교회가 기억하도록 하는 자리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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